2008년 07월 23일
기록- 어느 대화.
다음은 '근대 중국과 일본- 타산지석의 역사'라는 책에 나온 한 부분이다. 제국주의 시대의 초입에 있던 두 동아시아 국가의 차이점, 그리고 서로를 바라보던 시각에 대해 당시의 인물들, 그리고 문헌들을 폭넓게 참조하여 쓰여진 책이다.
2. 한바탕의 설전
-이홍장과 삼유례(모리 아리노리) 사이의 논쟁
1876년 1월 24일(광서 원년 12월 28일)에 일본의 주화공사 삼유례가 보정에 있는 직예총독의 관저를 방문하여 직예총독 겸 북양대신 이홍장을 만나서 주로 조선 문제에 관해 회담을 진행했다. 회담의 논의가 명치유신에 이르렀을 때 두 사람 사이에 상대를 날카롭게 공격하는 논쟁이 전개되었다. 이 설전은 양무파의 영수인 이홍장이 일본의 명치유신 및 그들의 서학 학습에 대해 지닌 견해를 보여주었다. 아래에 회담의 일부분을 소개한다.
두 사람이 만나서 몇 마디 문안인사를 나눈 뒤 이홍장이 삼유례에게 중서 학문에 관한 그의 견해를 물었다.
삼(모리 아리노리):"서양의 학문은 아주 유용한데 중국의 학문은 단지 30%만 취할 만하고 나머지 70%는 구식이라서 이미 쓸모가 없습니다."
이(이홍장):"일본의 학문 중에서 서학이 70%를 차지합니까?"
삼:"아직 50%도 안됩니다."
이:"일본의 의관이 모두 바뀌었는데 어떻게 50%도 안 된다고 합니까?"
정영녕(鄭永寧 일본공사관의 서기관):"그것은 외관이고 사실 요체는 아직 완전하게 배우지 못했습니다."
이:"우리나라는 상하가 모두 편안하고 기존의 기술을 배울 뿐 서양처럼 자신의 마음속에서 새로운 방법을 생각해 내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두 사람은 또한 일본이 명치유신 이후에 실시한 일련의 개혁에 대해 담론했다.
이:"근래 귀국의 거사는 아주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귀국이 이전의 의복을 바꾸고 서양식을 모방하는 일에 대해서는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삼:"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여 조금만 설명을 드리면 될 것입니다. 우리 나라의 옛날 의복은 각하께서 아시듯이 넓고 편해서 무사안일한 사람에게 적당하지만 일을 많이 하는 근면한 사람에게는 전혀 맞지 않습니다 따라서 옛날 의복은 과거의 상황에 맞고 현재의 시세에는 몹시 불편합니다. 지금 구제를 신식으로 바꿔서 우리나라에게 적지 않게 이익이 되고 있습니다."
이:"옛부터 내려오는 의복을 입는 것은 조상의 유지에 대한 추모의 정에 속함으로 자손들은 마땅히 존중하고 만세까지 보존해야만 옳은 것입니다."
삼:"만약 우리 조상이 아직 살아있다면 틀림없이 현재의 우리와 같이 하였을 것입니다. 지금부터 1000년 전 우리 조상이 귀국의 의복이 지닌 우수한 점을 보고 곧 받아들였습니다. 무슨 일이든 다른 나라의 장점을 잘 배우는 것이 우리나라의 좋은 전통입니다."
이:"귀국의 선조가 우리나라의 의복을 받아들인 것은 참 현명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의복은 만들기 편하고 귀국에서 생산되는 원료로 만들 수 있습니다. 지금 서양의복을 모방하려면 막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삼:"그렇기는 하지만 우리가 보기에 귀국의 옷보다 멋지고 편리합니다. 귀국처럼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헐렁한 신발을 신는 것은 우리 일본인에게 맞지 않습니다. 그 이외에도 우리에게 맞지 않는 부분이 있지만 근면은 부유하게 되는 기초이고 태만은 가난하게 되는 근원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각하께서 아시듯이 우리나라의 옛날 옷은 헐렁해서 불편했고 태만하게 지내기는 좋지만 근면하게 생활하기에는 불편합니다. 우리나라는 게을러서 가난하게 되기를 바라지 않고 열심히 일하여 부유하게 되기를 원했기 때문에 옛것을 버리고 새 것을 취한 것입니다. 현재 옷을 바꾸는 데 드는 비용은 뒷날 엄청난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말을 듣고 보니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귀국이 옛 의복을 버리고 서양식을 따르는 것은 독립정신을 포기하고 서구의 지배를 받는 것인데도 각하께서는 조금도 수치스럽지 않습니까?"
삼:"전혀 수치스러울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변혁들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 변혁들은 결코 외압을 받은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우리 스스로 결정한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나라가 옛날부터 아시아, 미국, 그리고 기타 다른 나라에 대해서도 장점을 발견하면 그것을 받아들여 우리나라에 이용했던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이:"우리나라는 결코 그런 형태의 변혁을 시행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무기, 철로, 전신 및 기타 기계 등은 필요하고 또한 서양의 가장 좋은 장점이기 때문에 그들에게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삼:"무릇 앞으로의 일은 누구도 그 좋고 나쁨을 확정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귀국이 400년 전에는 누구도 현재 귀국에서 입는 옷(만주족의 옷)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이:"그것은 우리나라 국내의 변혁이었지 결코 서양의 풍속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요."
삼:"그러나 변혁은 어쨌든 변혁이었고, 특히 당시 귀국은 그러한 변혁을 강요하여 귀국의 인민들로부터 혐오감을 일으키지 않았소."
'근대 중국과 일본- 타산지석의 역사'p.99-102 고려대학교 출판부
옷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속에 담긴 것은 옷에 대한 것만이 아니다. 두 사람도 드러내놓고 이야기하진 않고 있지만 그 점을 깨닫고 서로 물러서지 않는 견해차를 밝히고 있다. 두 나라의 미래가 각각 어떻게 되었는가를 생각해보면, 나중에 두 사람은 이날 한 대화를 문득 회상하고 있진 않았을까?
2. 한바탕의 설전
-이홍장과 삼유례(모리 아리노리) 사이의 논쟁
1876년 1월 24일(광서 원년 12월 28일)에 일본의 주화공사 삼유례가 보정에 있는 직예총독의 관저를 방문하여 직예총독 겸 북양대신 이홍장을 만나서 주로 조선 문제에 관해 회담을 진행했다. 회담의 논의가 명치유신에 이르렀을 때 두 사람 사이에 상대를 날카롭게 공격하는 논쟁이 전개되었다. 이 설전은 양무파의 영수인 이홍장이 일본의 명치유신 및 그들의 서학 학습에 대해 지닌 견해를 보여주었다. 아래에 회담의 일부분을 소개한다.
두 사람이 만나서 몇 마디 문안인사를 나눈 뒤 이홍장이 삼유례에게 중서 학문에 관한 그의 견해를 물었다.
삼(모리 아리노리):"서양의 학문은 아주 유용한데 중국의 학문은 단지 30%만 취할 만하고 나머지 70%는 구식이라서 이미 쓸모가 없습니다."
이(이홍장):"일본의 학문 중에서 서학이 70%를 차지합니까?"
삼:"아직 50%도 안됩니다."
이:"일본의 의관이 모두 바뀌었는데 어떻게 50%도 안 된다고 합니까?"
정영녕(鄭永寧 일본공사관의 서기관):"그것은 외관이고 사실 요체는 아직 완전하게 배우지 못했습니다."
이:"우리나라는 상하가 모두 편안하고 기존의 기술을 배울 뿐 서양처럼 자신의 마음속에서 새로운 방법을 생각해 내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두 사람은 또한 일본이 명치유신 이후에 실시한 일련의 개혁에 대해 담론했다.
이:"근래 귀국의 거사는 아주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귀국이 이전의 의복을 바꾸고 서양식을 모방하는 일에 대해서는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삼:"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여 조금만 설명을 드리면 될 것입니다. 우리 나라의 옛날 의복은 각하께서 아시듯이 넓고 편해서 무사안일한 사람에게 적당하지만 일을 많이 하는 근면한 사람에게는 전혀 맞지 않습니다 따라서 옛날 의복은 과거의 상황에 맞고 현재의 시세에는 몹시 불편합니다. 지금 구제를 신식으로 바꿔서 우리나라에게 적지 않게 이익이 되고 있습니다."
이:"옛부터 내려오는 의복을 입는 것은 조상의 유지에 대한 추모의 정에 속함으로 자손들은 마땅히 존중하고 만세까지 보존해야만 옳은 것입니다."
삼:"만약 우리 조상이 아직 살아있다면 틀림없이 현재의 우리와 같이 하였을 것입니다. 지금부터 1000년 전 우리 조상이 귀국의 의복이 지닌 우수한 점을 보고 곧 받아들였습니다. 무슨 일이든 다른 나라의 장점을 잘 배우는 것이 우리나라의 좋은 전통입니다."
이:"귀국의 선조가 우리나라의 의복을 받아들인 것은 참 현명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의복은 만들기 편하고 귀국에서 생산되는 원료로 만들 수 있습니다. 지금 서양의복을 모방하려면 막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삼:"그렇기는 하지만 우리가 보기에 귀국의 옷보다 멋지고 편리합니다. 귀국처럼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헐렁한 신발을 신는 것은 우리 일본인에게 맞지 않습니다. 그 이외에도 우리에게 맞지 않는 부분이 있지만 근면은 부유하게 되는 기초이고 태만은 가난하게 되는 근원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각하께서 아시듯이 우리나라의 옛날 옷은 헐렁해서 불편했고 태만하게 지내기는 좋지만 근면하게 생활하기에는 불편합니다. 우리나라는 게을러서 가난하게 되기를 바라지 않고 열심히 일하여 부유하게 되기를 원했기 때문에 옛것을 버리고 새 것을 취한 것입니다. 현재 옷을 바꾸는 데 드는 비용은 뒷날 엄청난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말을 듣고 보니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귀국이 옛 의복을 버리고 서양식을 따르는 것은 독립정신을 포기하고 서구의 지배를 받는 것인데도 각하께서는 조금도 수치스럽지 않습니까?"
삼:"전혀 수치스러울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변혁들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 변혁들은 결코 외압을 받은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우리 스스로 결정한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나라가 옛날부터 아시아, 미국, 그리고 기타 다른 나라에 대해서도 장점을 발견하면 그것을 받아들여 우리나라에 이용했던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이:"우리나라는 결코 그런 형태의 변혁을 시행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무기, 철로, 전신 및 기타 기계 등은 필요하고 또한 서양의 가장 좋은 장점이기 때문에 그들에게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삼:"무릇 앞으로의 일은 누구도 그 좋고 나쁨을 확정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귀국이 400년 전에는 누구도 현재 귀국에서 입는 옷(만주족의 옷)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이:"그것은 우리나라 국내의 변혁이었지 결코 서양의 풍속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요."
삼:"그러나 변혁은 어쨌든 변혁이었고, 특히 당시 귀국은 그러한 변혁을 강요하여 귀국의 인민들로부터 혐오감을 일으키지 않았소."
'근대 중국과 일본- 타산지석의 역사'p.99-102 고려대학교 출판부
옷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속에 담긴 것은 옷에 대한 것만이 아니다. 두 사람도 드러내놓고 이야기하진 않고 있지만 그 점을 깨닫고 서로 물러서지 않는 견해차를 밝히고 있다. 두 나라의 미래가 각각 어떻게 되었는가를 생각해보면, 나중에 두 사람은 이날 한 대화를 문득 회상하고 있진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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