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 감상(스포일러 있음)(2)


잊어먹기 전에 적어두려고 함.



스포일러 주의!!!!!!!!!!!!!!!!!!!!!!!!!!!!!!!!!!!!!!!!!!!!!!!!!!!!!!!!!!!!!!!!!!!!!!!!!!!!!!







1990년대에는 없던 새로운 위협을 이용, 계속해서 공격을 가해오는 Rev-9 앞에 미래의 희망인 대니의 목숨이 위협받는다.

대니를 보호하기 위해, 스카이넷이 없는 새로운 미래에서 보낸 병사인 그레이스, 그리고 사건에 이끌리듯이 나타난 사라 코너, 마지막으로 존 코너를 마침내 말살하는데 성공한 뒤 사라졌던 터미네이터 '칼'이 차례로 등장한다.

자신의 현재와 미래의 희망을 지키기 위해 과거로 온 '현재 세대'인 그레이스는, 1편에서 등장한 카일 리스의 역할을 계승하고 있다. 미래에서 그녀는 이미 병사로서 구작의 사이버다인제 사이보그들보다 더 강력한 Rev 시리즈들과 싸우고 있었다. 인류의 희망인 데니를 지키기 위해 과거로 온 그녀는 강력한 Rev-9에게 맞서기 위하여 개조 수술을 받았고, 그 덕에 뒤따르는 극심한 후유증에 시달리면서도 대니의 충실한 보호자로서 자신을 희생한다.

젊은 시절 웨이트리스였던, 그러다가 운명에 휘말리며 여전사가 된, 그러나 결국 자신의 희망을 지키지 못한 '과거 세대'인 사라 코너는 의문의 신호에 이끌려 아직 젊은 그레이스와 어린 대니 앞에 나타나 새로운 '터미네이터'인 Rev-9을 막아낸다. 세월의 흔적은 강인한 여전사를 골골거리게 만들었지만, 오랜 도피 생활에서 얻은 나름의 지혜와 갈고 닦은 전투 센스로 어찌어찌 한몸을 건사하며 젊고 어린 두 사람의 보호자이자 동반자가 된다.

존 코너를 '드디어' 살해하는 데 성공한 터미네이터 '칼'은, 임무에 성공했지만 사이버다인 사가 박살나며 그야말로 시간의 미아가 되고 말았다. 핵전쟁의 사도인 <스카이넷>이 사라진 탓에 임무에 성공했음에도 전쟁에 진 병사가 되었다.
임무가 사라진 살인 사이보그는 이제 자기보전 외에 마땅히 할일이 없었다. 지상목표인 존 코너 말살이라는 임무에 쫓겨 돌아볼 틈 없었던 인간 사회를 살피며 스스로 학습을 시작했고, 원래 인간 사이에 자연스럽게 침투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기종이니 인간을 흉내내며 사회에 녹아들게 된다.
처음에는 흉내였을지도 모르지만, 계속되는 학습과 만남 속에서 '칼'의 AI는 2편의 T-800이 그랬던 것처럼 인간을 이해하게 되었고, 동시에 자신의 임무 수행이 사라 코너에게 어떤 충격을 주었을지도 깨닫게 되었다. 거기까지 이르고 나서는 미래에서 가해지는 위협으로부터 인류를 구하기 위해 사라 코너를 조력하게 된다. 개는 더이상 그를 보고 짖지 않는다.

대니의 이 세 보호자는 미래의 희망을 보호하는 세 명의 동방 박사를 은유한다.
그리고 대니의 세 보호자는 오늘날의 사회에서 젊은 세대와 나이든 세대가 어떻게 함께해야 하는지를 나타낸다.
그리고 대니의 이 세 보호자는 미래의 희망을 위하여 현재의 젊은 세대와 나이든 세대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나타낸다.

1, 2편의 주인공 사라 코너는 '나이든 세대'이다. 그냥 세월이 흘러서 나이든 것 정도가 아니다. 과거에도 인류의 희망인 존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던 사라 코너는, 존을 잃은 영향에 더해 나이를 먹으면서 힘든 삶을 산 노인의 특성인 괴팍함까지 겸비하게 되었다. 그러니 현재의 젊은 세대인 그레이스와 충돌한다.
사라 코너는 미숙한 그레이스를 다그치며 너희 둘만 돌아다니면 열 시간만에 Rev-9에게 들킨다고 하지만, 젊을 때와 같지 않아서 그녀 자신도 보호대상인 대니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개조인간인 그레이스처럼 Rev-9과의 육탄전을 치르는 것은 언감생심이며, 디지털 추적을 피하려고 나름대로 애쓰기는 하지만 완전하지 못해 번번이 Rev-9에게 꼬리를 밟힌다.
이런 사라 코너는 완고하고 고집스러우며, 젊은 세대를 걱정하지만 변해버린 세상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중장년, 부모님들의 모습을 상징한다.

그레이스는 현재의 '젊은 세대'이다. 일단 미래에서 오긴 했지만, 보호 대상인 대니보다 연상이고, 나이대가 딱 그정도다. <스카이넷>이 사라지면서 개변된 미래는 사라 코너가 알던, 혹은 상상하던 미래와 그 양상은 비슷하지만 달랐고, 개변된 미래에서 온 그레이스는 자신이 겪고 있는 '현재'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입만 떼면 다 안다는 듯이 말하는 사라 코너의 꼰대질이 생리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한편, 그레이스에게는 이 모든 상황이 힘겹다. 아직 부모의 보호 아래에서 살던 10대 소녀였던 그녀에게, <리전>의 공격이 시작되며 세상은 생존 경쟁의 장이 되어버렸고, 거기서 살아남아 간신히 길을 찾은 뒤에도 한 명의 병사로서 목숨을 건 전쟁을 겪어왔다.
연약한 인간의 몸만으로는 그 가혹한 현실을 견디지 못해, 그녀는 개조 수술을 받아 인간을 넘어선 힘을 낼 수 있게 되었지만, 그나마도 약물 투약 없이는 Rev-9과 잠깐만 싸워도 신체 밸런스가 순식간에 무너지는 불안한 힘일 뿐이다.
그레이스는 자신의 전문 영역인 군사기술에 대해서 달인급 지식을 가지고 못하는 게 없었지만, <리전>이 나타나지 않아 아직 무너지지 않은, 이전의 복잡함을 유지하고 있는 인간 사회는 그녀에게 너무나 낯설고 힘든 현실이다.
거기에 자신 혼자서는 쓰러뜨릴 수 없는 Rev-9까지 정말로 쉬지 않고 집요하게 쫓아온다.
자신을 구해준 희망 그 자체인 <대니>에게 같은 여성인 사라 코너가 자꾸 <성모>니 뭐니 하는 것도 마음에 안 든다. 알지도 못하는 시간선의 '미래'에서 자기가 <성모> 역할을 했다는 말은, <리전>과 싸우던 그녀에게는 공허하고 같잖게 들린다. 물론 그녀도 사라 코너가 과거에 겪은 고생을 제대로 다 알지 못하지만. 그러니 그녀가 필요함을 느끼면서도,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서로 틱틱댄다.
이러한 그레이스는 진취적이고, 부모 세대와 달리 신기술을 자신의 몸의 일부처럼 사용하고, 막 사회에 진출하여 그 광대함과 복잡함에 방황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이다.

터미네이터 '칼'은 사라 코너가 맡은 것과는 다른 영역을 상징하는 '나이든 세대'이다. T-800은 1편과 2편의 상징이고, 옛 위협인 <스카이넷>의 사도이며, 작품 외적으로는 미국 마초, 강인한 가부장의 모습을 체현한 것과 다름없는 문화적 아이콘이다.
하지만 그는 <다크 페이트>에서는 미래의 희망을 짓밟아버린 존재이며, 비록 임무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할지라도 자신이 저지른 짓을 후회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과거에 가했던 폭력에 대한 사라 코너의 비난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사라 코너에게 있어 '터미네이터'라는 존재는 자신이 알고, 자신이 경계했던 과거의 위협 그 자체다. 한때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 큰 등으로 액체 사이보그의 공격을 막아주던, 존 코너의 아버지와도 같았던 터미네이터는 결국 화창한 대낮에 무참한 폭력으로 자신의 삶의 의미를 앗아간 원수일 뿐이었다. 머리로는 그 둘이 같은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감정적으로는 이제 그 모습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다시 사라 코너 이야기로 잠깐 돌아가자면, 과거 세대인 그녀의 입장에서는, 시간이 흘러 터미네이터가 임무를 잃고, 인간을 이해하게 되고, 위협이 아니게 되었음에도 경계는 풀리지 않는다. 경험, 과거의 교육, 살아온 삶의 궤적은 환경이 변했음에도 사람을 쉽게 놓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위협인 <리전>보다도 아는 위협인 <스카이넷> 쪽이 익숙하고 무섭다. 카일 리스와 존 코너를 앗아간 터미네이터와 <스카이넷> 쪽이 더 밉다.

아무튼 터미네이터 '칼'은, 인간 사회에 녹아드는 과정에서 전형적인 미국의 가부장적인 삶을 살게 된다. 그는 망나니같은 남편에게 학대받던 여자와 그녀의 아이를 구해주고, 어쩌면 존 코너와 사라 코너를 짓밟은 것에 대한 속죄의 의미로 그 두 사람에게 가장으로서 보호를 제공하며, 삶의 의미를 잃고 허우적대던 사라 코너에게 삶을 이어나갈 목적-미래로부터의 계속된 개변시도를 막아내도록 하는-을 부여해준다.
과거의 남성상-큰 오토바이, 소드 오프 샷건, 가죽 자켓, 선글라스, 짧게 깎은 머리, 근육, 폭력영화의 아이콘 등등등-을 상징하던 터미네이터는 나이를 먹고 그런 과거를 회한에 잠겨 돌아보는 존재이다. 존 코너가 자신과 같은 모델인 T-800과 여정을 함께했다는 것은 알았을까? 니카라과까지 쫓아가며 탐문하는 과정에서 아마 알게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죽은 존 코너와 그걸 지켜보던 사라 코너 입장에서 생각해보자면, 2편에서 듬직한 아버지였던 터미네이터가 애엄마를 두들겨패고 아이를 죽여버리는 광경과 같았을 거라는 데에 생각, 아니 계산이 미쳤을 것이다. 하물며 자신도 아들을 키우는 입장인데.
AI의 '계산'으로나마 그는 그런 자신의 과거를 후회하고 있다. 나이든 세대, 특히 남성 위주 문화의 중심을 형성했던 남성의 모습이다.

그렇게 서로 다른 '나이든 세대 여성', '나이든 세대 남성', '젊은 세대'가 대니를 보호한다는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움직이며 서로를 이해하고 ,돕고, 희생한다.

Rev-9과의 최후 결전에서, 표피의 액체 부분과 골격 부분이 2체로 독립된 전투를 수행하는 게 가능한 Rev-9을 상대로, 그레이스와 터미네이터는 각자의 특성에 맞게 상대를 골라 큰 타격을 입히고, 마침내 쓰러뜨리는 데 성공한다. 액체금속 사이보그인 T-1000 상대로 취약했던 T-800은 Rev-9의 골격 부분을 맡아 상대로 압도적인 스펙으로 짓눌러버리고, 강력한 개조 인간이지만 체급이 달려 쇳덩어리 그자체인 골격 부분과의 육탄전은 힘겹던 그레이스는 표피 부분을 맡아 쇠사슬로 절단하는 방식으로 움직임을 봉쇄한다.

인간의 마음을 가진 사이보그와, 사이보그의 신체를 가진 인간이, 나이든 세대의 남성과 젊은 세대 여성이 힘을 합쳐서 새로운 시대의 위협을 상대로 맞서 쓰러뜨린다.

미래의 희망인 '대니'를 위하여.

그리고 1, 2편의 주인공인 사라 코너는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아 대니의 보호자로서 새출발하게 된다.



덧- 보호 대상인 미래의 희망, 대니 역시 나름대로 상징성이 크다. 백인 남자아이였던 존 코너가 죽은 자리에, 히스패닉 여자 아이가 들어왔다. PC 주의라고 기분나빠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상징성은 크다.
카일 리스가 그레이스로, 스카이넷이 리전으로, 핵전쟁의 위협이 전자기술과 차별 등 현재의 위협으로 대체되는 상황에서 미래의 희망도 세대 교체를 했다. 민족 국가가 아닌 이민 국가인 미국이 벽을 쌓는 건, 어쩌면 벽 밖에 있을 새로운 희망을 놓치는 것은 아닐까? 여성들 중에서도 인류의 희망이 될 자질을 가진 인재는 있을 수도 있는 게 아냐? 하는 생각을 들게 만드는 설정이다.

덧2- 엉망이었던 스타워즈 시리즈와 달리, 과거에 대한 예우는 나름대로 충실하다고 생각한다. 터미네이터는 냉혈한같은 면모가 사라졌지만 멋지게 싸우고 멋지게 퇴장했다. 사라 코너는 시리즈를 관통하는 주인공이자 보호자, 관찰자로 여전히 희망의 곁에 남았다.

덧3- 2편에서 충실한 아버지이자 보호자였던 터미네이터가 3편 도입부에서는 마치 자식처럼 돌보던 존 코너에게 거친 폭력을 휘두름으로써 과거 사회를 대표했던 가부장제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려고 했다고 생각한다. 시리즈 팬으로서는 터미네이터에게 그런 이미지를 씌운 것은 어느 정도 유감스러운 점도 있지만, 그럼에도 이번 편의 터미네이터는 작품 내적으로는 인류의 새로운 희망을 지키기 위해, 작품 외적으로는 시리즈를 이어나갈 희망을 지키기 위해 다시금 충실한 보호자의 모습으로 돌아온 뒤 명예롭게 퇴장한다.


추가: 영화 내내 이 공대...는 가족의 모습을 보여준다. 가정폭력으로 이혼 후에 후회하면서 재혼하고 착하게 살기로 한 아버지 '칼', 아들을 가정폭력에 잃고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전남편을 증오하는 엄마 '사라', 머리 굵은 첫째딸 '그레이스'. 강인한 남성적 리더였던 존 코너와 달리, 대니는 시간이 날 때마다 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며 위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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