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전선의 오늘- 1943년 12월 13일 동부전선의오늘

 1943년 12월 13일

 남부 지역- 멜리니에서의 전투가 점점 가열차짐에 따라, 48기갑군단은 공세를 중지했다. 예상치 못한 독일군의 공세에, 다음 단계의 공세를 위해 집결시켰던 소련군의 4개 군단은 혹독하게 두들겨 맞았고, 소련군의 섬세한 계획은 부숴져버렸다.
 이윽고 스타프카는 남부집단군의 북익을 다시 한번 공격시키기 위해 대기시켰던 제1우크라이나 전선군의 목표를 남익의 독일군 좌측으로 수정하고 드네스테르(Dniestr)강의 전방 좌측을 포위하도록 하였다.(?) 이 계획은 니코폴(Nikopol)과 크리포이 로그(Krivoi Rog) 사이에서  제 1, 제2 우크라이나 전선군이 제3, 제4 우크라이나 전선군이 드네프르강 하류를 공격하는 동안 독일 제4기갑군과 8군을 제치고 진격해 모그리에프-포돌스키(Mogliev-Podolsky)와 페르보마이스크(Pervomaisk)에 도달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스타프카는 공세를 위해 병력 2365000명을 집결시켰다. 제 1우크라이나 전선군이 병력 924000명, 2우크라이나 전선군이 594000명, 제 3우크라이나 전선군이 337000명, 제4 우크라이나 전선군이 555000명이었다. 이 네 전선군은 2000대 이상의 전차와 자주포(Su's), 29000문의 야포와 2360대의 항공기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 이 물량은 사실상 전선에서 작전 가능한 전차 전부와 보병 전력의 절반에 달하는 수치였다. 이 방대한 전력에 맞서는 만슈타인의 남부집단군은 43개 보병사단과 15개 기갑사단, 7개 기갑척탄병사단을 보유하고, 클라이스트의 A집단군을 합한다면 총병력이 1760000명이었다. 2200대의 전차와 돌격포를 보유했지만 작전 가능한 것은 그 3분의 1정도였고, 16000문의 야포를 보유했다. 남부집단군과 A집단군은 1400대의 항공기를 보유했으나 이중 많은 기체가 수리부품과 연료의 부족으로 인해 지상에 묶인 실정이었다. 크리미아 반도와 드네프르강 남쪽 굴곡을 따라서는 독일 17군과 A집단군의 6군이 자리잡고 있었다. 또한 약화된 루마니아 3군도 크리미아 안에 있었다. A집단군은 8개 보병사단을 보유하고, 10개 루마니아 사단과 1개 교도사단(field traing div. ...뭐라 말해야 할지...)을 보유하고 있었다.

 1943년 가을의 전황은 독일 동부군의 기나긴 후퇴라고 말할 수 있었다. 독일 남부집단군은 드네프르 강을 다시 되건너고, 키에프에서도 철수하여 뒤로 물러났다. 히틀러는 잃은 점령지를 되찾으라고 강요하면서 독일 지휘부를 잡아 끌었다. 소련군 지휘관들에게는 전차군과 소총사단(보병사단), 그리고 재건된 그들의 공군이 합동하여 작전을 전개하는 기술을 완성한 때였다. 우크라이나에서 재개된 소련군 공세와 1944년의 공세들은 소련이 섬멸전의 개념을 완성했음을 입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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