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2월 09일
내 나름의 서평: 전격전의 전설

일단 잡설- 이 블로그의 포스트 비율을 보면 누구나 짐작하겠지만, 내가 가장 많은 관심을 두고 있는 주제는 2차 세계대전과 무기에 대한 것들이다. 초등학교(2학년때까진 국민학교;) 때부터 비행기가 좋았고, 이후에는 말 많던 F-X 사업을 계기로 구체적인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수십만원어치 잡지가 집에 쌓여갔고(월간지 위주로), 정말 전문적인 분들은 그것들을 별볼일 없는 정보로 치부하시고 있지만(이젠 나도 상당부분 동의하고 있다. 잡지도 말그대로 기본적으로 '취미' 위주인 플래툰 정도만 구입하고 있다), 내 관심과 이해를 아주 약간이나마 높이는 데에 기여했다는 것을 부정하긴 어렵다.
하지만 내가 천재가 아닌 이상, 역시 더 높은 이해를 하려면 더 어려운 책을 읽어야 하는 법인가 보다.(혹은 그에 상응하는 경험을 쌓든지) 옛날같이 인터넷에서 떠드는 비율은 이젠 엄청나게 줄었고, 조용히 눈팅이나 하는 가벼운 관찰자가 되었다. 인터넷에는 숨은 가치있는 정보가 많지만 가볍고 수박 겉핥기이며 우기기만 하는 정보들 또한 넘쳐나고 있다. 거기에 나까지 더 '이렇게나 많이' 보탤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어느 날 든 것이다. 그래서 잡지는 접었다.
이번에는 잡지보다 더 비싼 해외 원서들이 몇 권이나마 쌓여가고 있었다. 지금 영어단어 공부 겸, 심심풀이 겸으로 줄줄이 올리고 있는 <동부전선의 오늘>도 그중 하나다.(책 제목은 전혀 다르다) 하지만 나는 학교 교육 이외에는 영어를 제대로 배우지 않았고, 에어쇼 관람기에서도 말했듯이 외국인 앞에 서면 일단 굳는다. 다만 어색하게나마 몇 마디 질문을 던질 정도의 자신감은 있지만.(...) 문법도 질색해서 작문도 어렵다.(그나마 이 심심풀이 번역 덕에 약간이나마 문법에 대해 알 것도 같은 기분이 든다) 고등학교 졸업한 뒤로 따로 어휘 공부를 한 적도 없다. 그건 원서를 읽는 데에 치명적인 장애물인데, 어지간한 열정이 없이는 '지겨워서' 비싼 책을 묵히게 되는 경우가 허다해지는 것이다. 같은 분량의 한글 책을 읽는 것보다 몇 배의 시간을 더 소모한다. 사전도 뒤적여야 하며, 문법이 햇갈려 가끔씩 전혀 엉뚱한 문장으로 이해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땐 두 가지 정도를 '철없이', 하나 정도를 '철 좀 들어서' 원망하게 된다.
첫째- 20세기 초에 기왕 식민지가 될 거였다면, 영어권 국가에게 식민지가 되었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 이게 첫번째 철없는 원망이다. 철없다는 것은 이 생각이 터무니없다는 것을 한숨을 쉬면서 인정한다는 의미다...-_- 원망해봤자 과거가 바뀔 리도 없거니와, 누구의 식민지가 된다는 것은 이래저래 반가운 역사가 아닌 것이니 역시 이건 망상의 범주다.
둘째- 우리나라 영어교육은 왜 이따위냐. ...'MB씨의 기묘한 인수위'에서 내놓은 '몰입교육'이니 뭐니도 힘겹게 BBC나 CNN을 보다보면 아주 가끔씩은 공감이 갈 때가 있다. ...하지만 영어 교육이 제대로였던들, 실생활에서 당장 쓸 일이 없는 내가 중고생때 영어를 퍽이나 열심히 했을까. 게다가 기묘한 인수위의 삽질스런 모습을 보면 후회로 한숨부터 나오고, '가끔씩 공감' 하긴 해도 절대 찬성할 생각은 없는 정책이다. 방송 기자들까지 포함해 우리말도 제대로 모르는 인간이 천지인데, 영어에 올인해서 뭘하자는 건지? 영어가 신분상승의 '필수'라고 하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사실이 그렇게 되어간다는게 치명적 문제긴 하지만, 그렇게 나가다가 언젠가는 상류층은 영어로 말하고 중하위층은 우리말로 말하는 사회가 도래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도 든다. 영어 교육이 엉망이니 뭐니 해도, 스스로 열심히 배운 사람들은 해외 안나가도 영어 잘하는 걸 많이 봤다. 영어 교육에 문제는 있긴 하지만, 결국 그것에 대한 나의 원망도 '철없는' 원망일 뿐이다./결론 겸 셋째, '철 좀 든 원망'.- 정말 필요하면 내가 제대로 공부해야 하는 것이다. ...왜 안했을까.OTL
자, 이제 서평- 위의 잡설에서 이야기했듯이, 이런 종류의 책들은 국내에서 '잘 안 팔리는'고로 번역본이 잘 존재하지 않아, 정말 읽고 싶으면 해외에서 비싼 돈주고 주문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로, Periskop라는 곳에서 소개받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고 관심도 있었지만, 역시 언어의 장벽 때문에 망설이는 중이었다.
그런데 뜻 있는 역자분이 독일어 원서를 번역하고 계셨던 것이다. 이번에 이 책의 한국어판이 출시된 것을 알고 나서 곧바로 한 권을 구입했다.(3만 8천원. 값싼 책은 아니지만, 해외 원서를 주문하는 것보다야 싸게 먹히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그만한 가치가 있는 내용이다. 더군다나 읽기도 편하고)
나는 기갑부대에서 군생활을 하며, 심심함을 달래고 평소의 관심사를 조금이라도 풀기 위해 많은 교범들을 뒤적거렸다. 장교들처럼 체계적으로 공부할 시간도, 기력도, 스승도 없었기 때문에 교범의 구체적 내용은 별로 기억하는 것이 없지만, 그 중에 이런 구절이 있었떤 것은 확실하다.
'전격전은 3대 요결로서 '3S', 즉 기습Surprise, 속도Speed, 집중Superiority(옮긴이의 글에서 이 문장을 묘사할 때에는 '화력의 우위Superiority'로 표시됨. 하지만 내가 읽은 책에서는 단지 '집중'으로 표기되어 있었다고 기억함)을 갖추어야 했다.(...) 전격전의 수행과정은 1.후방에 5열을 침투시켜 정보를 수집하고, 민심을 교란하여 적국민의 전투 의지 약화, 2.공군은 제공권을 장악하고 적 후방의 도시, 부대 집결지, 지휘소 그리고 통신 시설 및 교통시설 등을 폭격하여 지휘조직과 예비군 동원체제를 마비시킴과 동시 심리적 충격, 3.전차, 자주포, 차량화된 보병, 공병 및 병참지원부대가 제병합동으로 적의 방어가 약한 전선의 좁은 정면에 대해 기습적으로 집중공격하여 돌파구 형성. 이때 돌파부대의 최첨단에는 보병이 위치, 4.기갑부대가 이 돌파구로 신속하고 종심 깊이 침투하여 적의 주공을 차단, 포위하여 적 재편성 시간 박탈, 포병지원이 신속히 전진하는 기갑부대를 지원 불가 시 급강하폭격기가 화력증원 담당, 5.포병의 지원을 받는 보병이 기갑부대와 연결작전 후 차단, 포위된 적을 소탕(...) 하여 무적 독일 국방군의 신화가 창조됨.' (옮긴이의 글-육군 전사학과 '세계 전쟁사'303~307. 첫번째 문장에 한해 내가 읽었던 어느 육군 교범 참조)
이 책(전격전의 전설)에서도 다루고 있고, 이제서야 이해의 폭이 어느 정도 넓어진 다음에 하는 말이지만, 육군 전사학과에서 버젓이 내민 저 문장에서 말하는 '전격전'이란 도대체 '전략'인가, '전술'인가?
1.후방에 5열을 침투시키는 것이 '군사작전'의 범주인지부터가 좀 애매하다. 예컨대 국정원이 북한에서 '김정일이 죽었다.', '전연군단 사령관들이 미국에 붙었다' 라는 식의 풍문을 퍼뜨리고 다닌다면 그것은 '군사작전'의 범주인가? 오히려 어떤 '책략'에 가깝지 않을까?
2.공군의 역할에 대한 구절을 보면, 1944~45년도의 미군이 항공력을 운용하던 것과 무슨 차이가 있나 싶기도 하다.
3.'돌파부대'의 최첨단에는 보병이 위치한다는 것은 어쩐지 소련군이 생각나는 구절이기도 하거니와, 첨단이 '꼭' 보병이라는 법이 있냐는 의문이 든다. 상황과 지형에 따라 기갑일 수도 있는 것 아닌가?
4.이 부분은 또 '전술'에 가까운 것 같다.
5.이건 대전 말쯤 되면 누구나 했다. 미군도 했고, 소련군도 했다. 그럼 얘들이 한 것도 다 '전격전'인가?
이 문장에서는 '전술'과 '전략'의 구분이 애매하며, 2, 3, 4, 5를 잘 보면 '전격전'이란 것의 일부 조각들만 떼어다가 멋대로의 그림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3대 필수 요소란 것도 44~45년도의 소련군을 보자면 기가 막히게 잘 써먹을 때가 많다. 만슈타인 같은 지장조차 농락당할 때가 있을 정도니까.
(그리고 '전차군단 독일'이란 말이 나올 만큼, 독일 전차의 성능에 대해서도 늘 '승리의 원동력'이라고들 하지만, 그건 얼치기인 내게조차 이 책을 읽기 전에도 늘 의문이었다. 프랑스 전차의 낡은 설계사상에 대해서는 모두들 익히 알고 있다. 하지만 프랑스 전차가 스펙상의 성능만큼은 1940년 존재하던 모든 독일군 전차보다 나은 수준이었다는 것은 간과하고 있다. 연합군 전차들을 압도하는 독일 전차는 44년에나 등장한다. 당시나 지금이나 전차 성능을 말하는 3대 척도, '공격력', '방어력', '기동력' 중 '공격력'과 '방어력' 만큼은 비능률적인 운용과 낡은 설계사상에도 불구하고 1940년 당시 프랑스 전차의 주력 차종들이 압도적이었다. 그런 상대를 독일이 '우세한 전차의 성능'을 바탕으로 이겼다라고 말하는 것은 심각한 오해다. 1940년에는 판터도, 티거도, 장포신 4호전차도, 하다못해 장포신 3호전차도 없었다)
결론은, 우리나라 장교들은 저런 문장으로 2차 대전과 '전격전'을 배우고 있다는 것이다. 그게 실제 전쟁이 벌어졌을 경우에 어떤 문제가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이기는 데에 별 문제가 없을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다만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느냐'의 시각으로 보자면, 나같은 얼치기도 장담하건데 저건 꽝이다. 덤으로, 이해를 하고 활용하는 것과 이해하지 못하고 활용하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다. 결과가 좋을 수도 있고, 전쟁의 결과란 좋은 것이 좋은 것이긴 하다만, '기왕 배울 거면' 옳게 이해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이 책은 '전격전'이라는 단어에 대한 뿌리깊은 오해(군사전력, 전술, 국가전략, 심지어 경제전략으로까지 비약되는)에 대한 반박과 제대로 된 이해를 다루고 있다. 그를 위해 집중적으로 1940년의 서부전역의 매 국면을 다루고 있으며, 어떻게 해서 '전격전'이라는 것이 이루어졌는가를 면밀히 추적해 나간다. 일부 사람들이 천재라고 말하는 히틀러가 사실은 군사적 문외한이라는 것이 어떤 문제들을 일으키는가를 보여주고 있으며, 효율성의 극치라던 독일군 내부도 실제로는 고루한 사고에 젖은 장군단과 새로운 시대를 열어나가는 군인들 간의 의견충돌로 불협화음과 시행착오가 끊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전격전'이란 업적이 이루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위기와 실수, 그리고 뒤집을 수 없는 적에 대한 열세가 있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유럽 최대의 육군국이던 프랑스를 조기에 퇴장시킨 그 '승리의 검'은 도대체 무엇인가?
'전격전'이란 도대체 뭔가?
나는 이 책을 두 번 정도 읽었지만, 100% 이해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극히 일부분의 껍데기를 들어냈을 뿐일 터이다. 하지만 '전격전'이란 것에 대한 오해를 푸는 데에 상당한 도움을 받았다고 여기며,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고 여긴다. 2차 대전사에 대해 관심이 있으며, 제대로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이 책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인터넷이나 군 교범에 돌아다니는 것들보다는 훨씬 도움이 된다는 것만큼은 장담한다.
# by | 2008/02/09 11:59 | Military | 트랙백 | 덧글(2)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귀하의 극찬에 몸둘바를 모를 만큼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하긴, 제가 쓴 글이 아니라
저는 그저 한국말로 옮긴 것 밖에 없습니다만,
저자가 만일 귀하의 글을 읽는다면
무척이나 기뻐할 듯 합니다.
일독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수도기계화보병사단에서 근무 중인
진중근 대위 드림.
저야말로 감사드립니다. 길고 힘든 작업을 거쳐 이 책의 번역본을 내어주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