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근현대사에서 세계를 주름잡았던 나라들이 공업화, 현대화의 척도로 여겼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철도'다. 자동차가 지금처럼 흔하다 못해 넘쳐 흐르던 시절이 아니었고, 비행기의 성능 역시 오늘날과 같은 해외 여행에는 적합한 수준이 아니었다. 철도는 나라의 힘을 구석 구석까지 흐르게 할 수 있는 동맥이었고, 타국과의 왕래의 수단이었다. 군사적으로는 미국의 남북전쟁 이래 병력의 신속한 배치 수단으로 각광받았으며, 안정적이고 확실한 보급망 유지 수단이기도 했다.
독일 2제국은 3B정책을 철도로 이을려고 시도했고, 미국의 어느 철도왕은 태평양과 대서양을 계열사 선박으로 이은 다음 나머지는 자사 철도로 횡단 가능하도록 하는 세계 일주 철도를 계획하기도 했다.(하지만 대운하 따위보다 훨씬 현실성있다고 생각한다.-_-)
당연하게도, 근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열강의 대열에 들었던 일본 역시 철도를 중요시했는데- 이 책은 그 중에서도 남만주 철도 주식회사-이하 만철-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늘 무슨 한이라도 맺힌 것처럼 만주, 만주, 고토회복을 외치는 사람이 흔해 빠진 대한민국이지만, 정작 근대의 만주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거나 관심이라도 가졌던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역사책에서도 고대 국가들의 영토였다거나 청나라의 발원지, 혹은 항일 독립 투쟁의 역사 측면에서만 다루고 있으며, 만주가 가진 위상이 어떤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초중고 통틀어서 일말의 가르침조차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나라에서 만주를 되찾자고 부르짖는 것이다!
만철은 러일 전쟁에서의 승리로 만주 일대의 패권이 일본으로 넘어가면서 본격적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한 기구이다. 저자 고바야시 히데오가 책 첫머리에 이 '만철'에 대해 언급한 말을 옮기자면,
'...만주의 중요 산업을 지배하고, 철도 인접지역에 부속지라는 이름의 '영토'를 가진 이 회사는, 명칭은 주식회사였지만 그 실상은 하나의 식민지 국가였다. 세칭 '만철왕국'. 이 회사는 물론 중국 동북부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일본 국내에도 그 이상으로 큰 영향을 끼쳤다...'
...라고 한다.
만철은 단순히 철도를 놓고 운영하는 기업이 아니었고, 휘하에 광업, 제련, 대두유 정제, 석유화학 등 많은 영역으로 확장된 사업을 거느리고 있었고, 만주의 공업화를 추진하는 주체였다. 또한 1-2차 세계대전 사이에는 이미 한반도 종단- 시베리아 횡단- 유럽에 이르는 유라시아 철도망의 한 축을 경영하기까지 했다.(!) 한국인들에게는 기분나쁜 사실일지 모르겠지만, 철도의 통행성만 놓고 봤을때에는 만철이 활약하면서, 경부선에서 만주와 시베리아를 거쳐 프랑스까지 가는 것이 가능하던 1920~30년대가 오히려 지금보다 나았다고 볼 수도 있다.(물론 지금의 현실은 경제적, 기술적 요인보다는 정치적인 요인에 가로막힌 것이지만)
또한 국가통제와 관료통제를 엮은 독특한 방식의 통제경제를 도입하는데, 이것은 일본의 전시경제체제라 할 수 있는 '1940년 체제'의 원형에 해당한다고 한다. 이 체제가 전후의 '일본 주식회사'라는 시스템에 상당부분 영향을 끼쳤다는 점을 감안해 볼 때, 만주의 경제 체제를 고안했던 '만철 조사부'의 영향이 단순히 만주 자체의 시스템에만 그치지 않았고,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야말로 일본의 동인도회사랄까?
이 책에는 그런 만철에 대한 개략의 설명과 함께, 그것이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가에 대한 설명이 잘 되어있다. 일본이 만주에서 어떤 가치를 보았고, 거기서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를 알고 싶다면 추천할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덧1 - 일본인 저술임에도 만철이 중국인 및 조선인에 대해서 차별적이고 무관심했다는 점에 대한 언급은 책 곳곳에 나타나 있다. 결코 우익의 DDR에 해당하는 책 따위가 아니다. 설령 이러한 언급이 없다 하더라도 자료적 가치를 무시할 수 없다.
덧2 - 인문학의 역할에 대해서 새삼 생각해보게 하는 단락이 있는데, p.137~의 "경제조사회의 단면"이라는 단락이다. 거시적 관점에서 만주의 국민경제 전체를 분석하는 방법론 두 가지의 대립이 언급되는데, 그 접근 방식에 따라 무엇을 조사하고 어떻게 이용하여 어떤 정책을 수립하는가에 대한 영향을 끼치는지, 그런 매커니즘에 대해 한번 생각해볼 기회가 되었다. 일본이 강한 이유 중 하나를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하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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