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어느 누구도 감히 악덕에 관해서는 입을 열지 못한다. 그렇다. 선이 녹초가 되도록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도, 거기에는 죄악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 수백만의 인간이 교수형을 당했는데도 거기에는 죄인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만약 누군가가 [그 짓을 한 놈들은 어떻게 됐지......]하고 묻기라도 한다면, 그는 사방으로부터 비난을 받아야 한다. 처음에는 그래도 제법 정답게 [아니, 동무. 왜 그러시는 거요! 무엇 때문에 자꾸 낡은 상처를 건드리려고 하오?]라고 말하지만, 나중에는 몽둥이를 휘두르며 내뱉는다. [잠자코 있어, 이 덜된 놈아! 우리가 너희들을 복권시켰다는 걸 잊었니!]
서독에서는 1966년까지 <8만 6천명>의 나치 전범들이 재판에 회부되었는데, 우리는 신문마다 라디오마다 목이 터져라고 외쳐대고도 모자라서 직장을 마친 후에 다시 회의에 남아서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적다! 8만 6천 명은 아직도 적다! 20년형가지고는 모자란다! 더 연장해라!]
한편 우리 나라에서(최고재판소 군사위원부의 이야기에 의하면) 유죄선고를 받은 것은 <10명>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데르 강과 라인 강 저 너머의 사건이 우리를 흥분시킨다. 그러나 모스크바 교외와 소치 교외의 푸른 담 뒤에서 행해지고 있는 일이며, 우리 남편과 아버지의 살인자들이 우리의 대로를 자동차로 질주하고 우리는 그들에게 길을 양보해야 한다는 사실은 우리의 마음을 건드리지도 않고 흥분시키지도 않는다. 그것은 곧 <낡은 것을 들추어내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다치고, 8만 6천명이라는 서독인의 숫자를 우리 나라의 인구에 비례해서 환산한다면, 우리 나라의 25만명에 해당하는 숫자이다!
그러나 지난 25년 동안 우리는 그런 죄인을 본 적도 없고 그들을 재판에 회부한 적도 없다. 우리는 <그들의> 상처를 들추어내지 않으려고 조심할 뿐이다. 그라노프스키 3가에 살고 있는 몰로토프는 바로 그들 모두의 상징적인 존재이다. 자기 만족에 사로잡힌 채 아직까지도 자기 잘못을 하나도 시인하지 않고 있는 우둔한 흡혈귀 몰로토프는 유유히 보도를 가로질러 길고 넓은 고급 승용차에 몸을 싣곤 한다.
이것은 우리 동시대인이 풀 수 없는 수수께끼이다. 즉 독일인은 자기의 죄인들을 재판에 회부했는데, <왜> 러시아에서는 그런 권리가 주어지지 않았는가? 만약 우리 몸 속에서 썩어가는 이 추악한 것을 정화시킬 권리가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앞으로 어떤 파멸의 길을 걸어야 할 것인가? 그리고 그때 러시아는 어떤 교훈을 세계에 줄 수 있을 것인가?
독일에서는 재판이 계속되는 동안 여기저기서 놀랄 만한 현상들이 일어나곤 했다. 한 피고는 머리를 부둥켜쥐고 변호를 거절하면서 판결 이외에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 앞에서 열거되고, 다시 재연된 일련의 죄상에 혐오감이 복받쳐 더 이상 살고 싶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바로 이것이 재판이 거둘 수 있는 최고의 성과다. 범인이 저도 모르게 몸을 떨 정도로 죄악이 철저하게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법정에서 팔만육천 번이나 죄인에게 판결을 내린 나라는(문학과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그것은 철저하게 규탄되었다) 해마다 죄악으로부터 정화되어 가고 있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의 후손들은 몇몇 세대를 가리켜 소심하기 짝이 없는 세대였다고 말할 것이다. 맨 처음 우리는 수백만의 동료들이 학살당하도록 순순히 내버려두고, 그 다음엔 살인자들의 안일한 노후를 보장해주도록 그들을 보살펴주고 있으니 말이다.
만약 러시아의 위대한 전통, 참회라는 것이 후손들에게 이해되지 못하고 우스꽝스럽게 받아들여진다면,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다른 사람들에게 자행한 것의 1백분의 1이라도 참아낼 수 없을 것 같다는 동물적인 공포심이, 그들 속에 있는 정의에 대한 지향을 압도한다면,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혹은 그들이 살해당한 사람들의 피로 이룩된 행복에 탐욕스럽게 집착한다면, 우리는 도대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인가?
물론 인육도살기의 손잡이를 돌린 자들은 1937년이라 해도 이젠 모두 50세에서 80세까지 늙어버렸다. 그들은 자기의 청춘시절을 유복하게 배부르게 편안하게 보낼 수 있었다. 그러므로 <공평한> 보복을 가하기에는 이미 때가 늦어버렸고 또 그들에게 그것을 보상받는다는 것도 이젠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관대한 태도를 보이도록 노력하자. 우리는 그들을 총살하지도 않을 것이고, 그들에게 소금물을 먹이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빈대를 살포하지도 않고, <제비>고문을 시키지도 않고 1주일씩 잠 못 자게 세워두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또 장화로 걷어차지도 않고, 고무방망이로 때리지도 않고, 또 쇠고리로 뇌를 압착하지도 않고, 사람 위에 사람이 자도록 짐짝처럼 감방에 쓸어넣지도 않을 것이다. 그들이 했던 그 어떠한 고문도 우리는 바라지 않는다!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 조국과 우리 자식들 앞에 <모든 죄인을 찾아내서> 그들 <모두를 재판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을 재판하기보다도, 그들이 저지른 범죄를 재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그들 각자가 큰 소리로 다음과 같이 말해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렇습니다. 나는 사형집행인이었고 살인자였습니다.]
그리고 만약 우리나라에서 이십오만 번만 이런 말이 외쳐진다면(서독에 뒤지지 않을 비율을 감안해서) 일단 그것으로나마 만족할 수 있지 않을까?
20세기의 우리들은 재판의 야만성이 무엇이며, <들추어내서는 안된다>는 <낡은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수십 년이 걸리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구분해 둘 의무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일부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제지할 권리를 가진다는 그 관념 자체를 공개적으로 탄핵할 의무가 있다. 악에 대해 침묵을 지키면서 그것이 표면에 나타나지 않도록 슬그머니 허리춤에 숨겨둔다면, 그 악은 앞으로도 수없이 고개를 들고 일어날 것이다. 우리가 악인들을 징벌하지 않고 또 그들을 비난조차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국 그 비겁한 죄인들을 보호하는 것이 되고, 또 이것은 새로운 세대들로부터 정의의 온갖 원칙을 앗아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무관심>한 세대로 성장하겠지만, 이것은 결코 <교육의 부족>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젊은이들은 비겁한 행동이 한번도 이 땅에서 처벌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행동은 언제나 행복을 안겨다 준다는 것을 자기들의 교훈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이런 나라에 산다는 것은 얼마나 불쾌하고 또 얼마나 무서운 일이겠는가!...
'수용소군도'.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p232-235
저기서 단어 몇 개씩만 바꾼다면 우리나라에도 적용 가능한 부분이 많다는 것은 참 서글픈 일일 것 같다고 문득 생각했다.
서독에서는 1966년까지 <8만 6천명>의 나치 전범들이 재판에 회부되었는데, 우리는 신문마다 라디오마다 목이 터져라고 외쳐대고도 모자라서 직장을 마친 후에 다시 회의에 남아서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적다! 8만 6천 명은 아직도 적다! 20년형가지고는 모자란다! 더 연장해라!]
한편 우리 나라에서(최고재판소 군사위원부의 이야기에 의하면) 유죄선고를 받은 것은 <10명>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데르 강과 라인 강 저 너머의 사건이 우리를 흥분시킨다. 그러나 모스크바 교외와 소치 교외의 푸른 담 뒤에서 행해지고 있는 일이며, 우리 남편과 아버지의 살인자들이 우리의 대로를 자동차로 질주하고 우리는 그들에게 길을 양보해야 한다는 사실은 우리의 마음을 건드리지도 않고 흥분시키지도 않는다. 그것은 곧 <낡은 것을 들추어내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다치고, 8만 6천명이라는 서독인의 숫자를 우리 나라의 인구에 비례해서 환산한다면, 우리 나라의 25만명에 해당하는 숫자이다!
그러나 지난 25년 동안 우리는 그런 죄인을 본 적도 없고 그들을 재판에 회부한 적도 없다. 우리는 <그들의> 상처를 들추어내지 않으려고 조심할 뿐이다. 그라노프스키 3가에 살고 있는 몰로토프는 바로 그들 모두의 상징적인 존재이다. 자기 만족에 사로잡힌 채 아직까지도 자기 잘못을 하나도 시인하지 않고 있는 우둔한 흡혈귀 몰로토프는 유유히 보도를 가로질러 길고 넓은 고급 승용차에 몸을 싣곤 한다.
이것은 우리 동시대인이 풀 수 없는 수수께끼이다. 즉 독일인은 자기의 죄인들을 재판에 회부했는데, <왜> 러시아에서는 그런 권리가 주어지지 않았는가? 만약 우리 몸 속에서 썩어가는 이 추악한 것을 정화시킬 권리가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앞으로 어떤 파멸의 길을 걸어야 할 것인가? 그리고 그때 러시아는 어떤 교훈을 세계에 줄 수 있을 것인가?
독일에서는 재판이 계속되는 동안 여기저기서 놀랄 만한 현상들이 일어나곤 했다. 한 피고는 머리를 부둥켜쥐고 변호를 거절하면서 판결 이외에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 앞에서 열거되고, 다시 재연된 일련의 죄상에 혐오감이 복받쳐 더 이상 살고 싶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바로 이것이 재판이 거둘 수 있는 최고의 성과다. 범인이 저도 모르게 몸을 떨 정도로 죄악이 철저하게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법정에서 팔만육천 번이나 죄인에게 판결을 내린 나라는(문학과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그것은 철저하게 규탄되었다) 해마다 죄악으로부터 정화되어 가고 있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의 후손들은 몇몇 세대를 가리켜 소심하기 짝이 없는 세대였다고 말할 것이다. 맨 처음 우리는 수백만의 동료들이 학살당하도록 순순히 내버려두고, 그 다음엔 살인자들의 안일한 노후를 보장해주도록 그들을 보살펴주고 있으니 말이다.
만약 러시아의 위대한 전통, 참회라는 것이 후손들에게 이해되지 못하고 우스꽝스럽게 받아들여진다면,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다른 사람들에게 자행한 것의 1백분의 1이라도 참아낼 수 없을 것 같다는 동물적인 공포심이, 그들 속에 있는 정의에 대한 지향을 압도한다면,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혹은 그들이 살해당한 사람들의 피로 이룩된 행복에 탐욕스럽게 집착한다면, 우리는 도대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인가?
물론 인육도살기의 손잡이를 돌린 자들은 1937년이라 해도 이젠 모두 50세에서 80세까지 늙어버렸다. 그들은 자기의 청춘시절을 유복하게 배부르게 편안하게 보낼 수 있었다. 그러므로 <공평한> 보복을 가하기에는 이미 때가 늦어버렸고 또 그들에게 그것을 보상받는다는 것도 이젠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관대한 태도를 보이도록 노력하자. 우리는 그들을 총살하지도 않을 것이고, 그들에게 소금물을 먹이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빈대를 살포하지도 않고, <제비>고문을 시키지도 않고 1주일씩 잠 못 자게 세워두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또 장화로 걷어차지도 않고, 고무방망이로 때리지도 않고, 또 쇠고리로 뇌를 압착하지도 않고, 사람 위에 사람이 자도록 짐짝처럼 감방에 쓸어넣지도 않을 것이다. 그들이 했던 그 어떠한 고문도 우리는 바라지 않는다!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 조국과 우리 자식들 앞에 <모든 죄인을 찾아내서> 그들 <모두를 재판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을 재판하기보다도, 그들이 저지른 범죄를 재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그들 각자가 큰 소리로 다음과 같이 말해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렇습니다. 나는 사형집행인이었고 살인자였습니다.]
그리고 만약 우리나라에서 이십오만 번만 이런 말이 외쳐진다면(서독에 뒤지지 않을 비율을 감안해서) 일단 그것으로나마 만족할 수 있지 않을까?
20세기의 우리들은 재판의 야만성이 무엇이며, <들추어내서는 안된다>는 <낡은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수십 년이 걸리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구분해 둘 의무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일부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제지할 권리를 가진다는 그 관념 자체를 공개적으로 탄핵할 의무가 있다. 악에 대해 침묵을 지키면서 그것이 표면에 나타나지 않도록 슬그머니 허리춤에 숨겨둔다면, 그 악은 앞으로도 수없이 고개를 들고 일어날 것이다. 우리가 악인들을 징벌하지 않고 또 그들을 비난조차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국 그 비겁한 죄인들을 보호하는 것이 되고, 또 이것은 새로운 세대들로부터 정의의 온갖 원칙을 앗아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무관심>한 세대로 성장하겠지만, 이것은 결코 <교육의 부족>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젊은이들은 비겁한 행동이 한번도 이 땅에서 처벌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행동은 언제나 행복을 안겨다 준다는 것을 자기들의 교훈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이런 나라에 산다는 것은 얼마나 불쾌하고 또 얼마나 무서운 일이겠는가!...
'수용소군도'.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p232-235
저기서 단어 몇 개씩만 바꾼다면 우리나라에도 적용 가능한 부분이 많다는 것은 참 서글픈 일일 것 같다고 문득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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