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본군의 대한제국군 해산시도에 저항해 군 일제 봉기. 고종(!)의 근왕령에 힘입어 전국 각지에서 의병과 더불어 대한제국군의 공격. 덤으로 러시아 황제에게 지원 요청.
2. 일본군 떡실신. 여차저차해서 일본군의 한반도 철수.
3. 황권은 강화되나 러시아의 이권 침탈 강화. 원산항에 러시아 함대 주둔. 러시아의 극동 남하정책의 신호탄에 긴장탄 영, 미. 일본에 함대 주둔 추진.
4. 이 케이스로 시간이 좀 지나, 대한제국은 러시아 제국의 속국화, 부마국화, 식민지화 셋 중 하나를 겪게 된다.(...)
5. 1차 세계대전 발발. 러시아 제국이 공산혁명으로 붕괴되고, 러시아의 수탈에 쌓인 불만이 폭발하여 전국적인 저항이 일어나 주둔한 러시아군과 약간의 충돌이 있은 끝에 몰아내는 데에 성공. 이후 '좀 특이하게' 민족자결주의 원칙에 따라 독립한 케이스가 됨. 러시아 제국에 지배당할 당시 황실이 건재했다면 입헌군주제, 붕괴되었다면 공화국이 들어서게 된다.
6. 소비에트 연방 성립.
7. 공산주의 국가의 성립에 강한 위협을 느낀 대한제국(?)은 블라디보스토크 일대로 간섭군을 보내는 데에 협조하지만 치열한 싸움 끝에 털리고 쫓겨나온다. 물론 소련은 그것을 잘~ 기억해둔다.
8. 소비에트 러시아의 확장 의도를 막을려고 하는 영국의 지원 하에 상공업 육성 시작. 의류와 담요를 중심으로 한 경공업 위주.(...아마도) 많은 자본이 드는 중공업의 발달은 1920~30년대를 통틀어도 미약한 수준.
9. 이 시기 군사교리 및 장비의 변화는 영국군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 많은 장교들이 영국으로 유학을 다녀온다. 영국제 군사장비들이 수입되고, 그 중 상대적으로 간단한 보병화기의 일부는 라이센스 생산을 하게 된다. 덤으로 영국 함대 일부가 거문도에 주둔하기로 한다.
보병화기 라이센스: 소총: 리 엔필드./ 기관총: 브렌건. 빅커즈.
보병화기 수입: 박격포, 야포, 대전차포 등 화포 일체.
전차: 탕케테 다수.(기병대 교체)/ 돈이 없어서 얼마 못 산 mk.1 보병전차(1개 대대분). 부품, 연료 전량 수입.
항공기: 글로스터 글래디에이터./ 소드피쉬. 역시 전량 수입.
함선: 구축함 3척. 수뢰정 9척.
물론 빈약한 경제력 때문에 이정도로도 꽤나 무리한 것일 터... 더군다나 30년대를 강타한 세계 경제공황은 한반도를 피해가지 않았다. 점차 수출을 늘려가던 경공업 공장 상당수가 업종을 전환하거나 문을 닫았다. 특이한 점은 mk.1 보병전차 보유량 자체가 적어 영국 교관들의 가르침과는 달리 우르르 몰려다니는 훈련을 했다는 점.
10. 영국의 시선이 동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돌아간다.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전체주의 국가들이 대두하게 됨에 따라 동아시아를 신경쓸 틈이 없었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은 '강철의 대원수'는 1936or37년에 대한제국을 향해 '땅을 내놓아라'는 요구를 하게 된다.
11. 바짝 긴장탄 대한제국. 한소 국경에 병력을 전개하고 국내의 공산주의 세력을 때려잡는 공안정국. 덤으로 영국에게 지원을 요청하여 무기와 탄약을 비축하는 데에 전력투구.
12. 소련은 느긋하게 준비를 마친 다음 대병력을 투입, 두만강을 건넌다. 시기는 봄. 덤으로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던 소련 해군도 동해 해안선을 따라 포격을 가한다.
13. 영국한테 육전을 배운 대한제국군과 대숙청 이후 개판이 된 소련군의 대결. 낯선 땅, 낯선 전장에서 완강하게 저항하는 대한제국군에게 소련군은 적지 않은 희생을 내고 진격은 지지부진. 덤으로 별다른 성과 낼 거리가 없어서 손가락만 빨던 대한제국 해군과 공군(영국 영향으로 독립된 공군의 모양세나마)이 블라디보스토크를 공습, 소드피쉬로 소련 함선 2~3척을 골로 보내는 데에 성공한다. 양측 다 전차는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도로망과 산악지형으로 인해 움직이는 토치카 역할 외에는 힘을 쓰지 못하고, 결국 전형적인 보병 전투와 기병전투가 벌어지게 된다. 결국 전쟁 첫 해 겨울은 밀고 밀리는 고지전으로 전개되어버려 양측, 특히 공격 측인 소련군에 막대한 인명 피해만 남기고 다음 해를 맞이하게 된다. 덤으로 대한제국군이 아주 힘겹게 동해안 축선까지 끌고 간 mk.1 보병전차들이 집단 운용되어 소련군을 몰아붙이는 일도 있었지만 급히 출동한 러시아 해군의 함포 사격으로 인해 공세가 무산됨.
14. 강철의 대원수께서는 동북아시아 벽촌에서 당한 개망신에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휘하의 장수(...)들을 나무라지만, '유능한 사람은 네가 다 죽여버렸잖아!!'라는 일갈에 침울해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15. 국제연합에선 소련의 침략에 대한 비난이 가중되지만 소련은 묵묵부답. '빨괭이(...) 집단의 공격에 영웅적으로 저항하는 동아시아의 소국'이라는 이미지에 경도된 의용군이 각지에서 모여듬. 모험을 찾아오거나 혹은 이념적 이유로 소련과 싸우기로 결심한 미국, 혹은 북유럽 및 동유럽 출신자들도 있었고, 개중에는 일본인도 상당수. 덤으로 아주 소수지만 러시아 제국의 백군 출신 군인들도 섞여 있었음. 영국은 미국을 채근하고, 미국은 M3경전차와 버팔로, 더글라스 데버스테이터 뇌격기, 75mm 야포 등을 판매, 혹은 공여한다. 여기에 영국은 급히 블렌힘 폭격기 20대를 공여하여, 블렌힘이 대한제국 최초의 폭격기가 된다.
16. 소련은 사령관을 게오르기 주코프로 갈고, 대량의 전차, 화포, 항공기를 집중시킴과 동시에 소드피쉬에게 쫄아 있던 우세한 해군력을 이용해 전황을 타개하려고 함. 그리고 소련군의 춘계 공세 시작. 대한제국군의 신들린 방어 때문에 양측 다 큰 희생을 내지만 소련군은 점차 익숙해지는 제병 합동작전의 위력으로 함경도 일대에서 무려 1년을 끌었던 소모전 국면을 타개하는 데에 성공하고, 한반도 동북면을 석권함. 주코프의 위상이 크게 올라가는데, 방심한 서탈린 대원수는 주코프를 모스크바로 소환하고 군에 휴식 명령을 내리는 실수를 저지름.
17. '원산, 원산을 보자!'라는 강철의 대원수의 요구에 주전론과 주화론이 갈린다. 그러나 겨울 초입에 원산 북쪽에서 벌어진 전차전에서 M3로 구성된 대대를 주축으로 한 지상군이 제대로 된 일격을 먹이고, 공군과 해군이 긴밀한 협조로 소련 해군을 향해 어뢰 공격을 가해 피해를 입히고 북쪽으로 쫓아내는 데에 성공한다. 대대적인 역습에 직면한 소련군은 대한제국군이 했던 것 마냥 진지 방어전으로 전환하지만 보급의 어려움으로 인해 점차 후퇴하게 된다.
...꼐속?
2. 일본군 떡실신. 여차저차해서 일본군의 한반도 철수.
3. 황권은 강화되나 러시아의 이권 침탈 강화. 원산항에 러시아 함대 주둔. 러시아의 극동 남하정책의 신호탄에 긴장탄 영, 미. 일본에 함대 주둔 추진.
4. 이 케이스로 시간이 좀 지나, 대한제국은 러시아 제국의 속국화, 부마국화, 식민지화 셋 중 하나를 겪게 된다.(...)
5. 1차 세계대전 발발. 러시아 제국이 공산혁명으로 붕괴되고, 러시아의 수탈에 쌓인 불만이 폭발하여 전국적인 저항이 일어나 주둔한 러시아군과 약간의 충돌이 있은 끝에 몰아내는 데에 성공. 이후 '좀 특이하게' 민족자결주의 원칙에 따라 독립한 케이스가 됨. 러시아 제국에 지배당할 당시 황실이 건재했다면 입헌군주제, 붕괴되었다면 공화국이 들어서게 된다.
6. 소비에트 연방 성립.
7. 공산주의 국가의 성립에 강한 위협을 느낀 대한제국(?)은 블라디보스토크 일대로 간섭군을 보내는 데에 협조하지만 치열한 싸움 끝에 털리고 쫓겨나온다. 물론 소련은 그것을 잘~ 기억해둔다.
8. 소비에트 러시아의 확장 의도를 막을려고 하는 영국의 지원 하에 상공업 육성 시작. 의류와 담요를 중심으로 한 경공업 위주.(...아마도) 많은 자본이 드는 중공업의 발달은 1920~30년대를 통틀어도 미약한 수준.
9. 이 시기 군사교리 및 장비의 변화는 영국군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 많은 장교들이 영국으로 유학을 다녀온다. 영국제 군사장비들이 수입되고, 그 중 상대적으로 간단한 보병화기의 일부는 라이센스 생산을 하게 된다. 덤으로 영국 함대 일부가 거문도에 주둔하기로 한다.
보병화기 라이센스: 소총: 리 엔필드./ 기관총: 브렌건. 빅커즈.
보병화기 수입: 박격포, 야포, 대전차포 등 화포 일체.
전차: 탕케테 다수.(기병대 교체)/ 돈이 없어서 얼마 못 산 mk.1 보병전차(1개 대대분). 부품, 연료 전량 수입.
항공기: 글로스터 글래디에이터./ 소드피쉬. 역시 전량 수입.
함선: 구축함 3척. 수뢰정 9척.
물론 빈약한 경제력 때문에 이정도로도 꽤나 무리한 것일 터... 더군다나 30년대를 강타한 세계 경제공황은 한반도를 피해가지 않았다. 점차 수출을 늘려가던 경공업 공장 상당수가 업종을 전환하거나 문을 닫았다. 특이한 점은 mk.1 보병전차 보유량 자체가 적어 영국 교관들의 가르침과는 달리 우르르 몰려다니는 훈련을 했다는 점.
10. 영국의 시선이 동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돌아간다.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전체주의 국가들이 대두하게 됨에 따라 동아시아를 신경쓸 틈이 없었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은 '강철의 대원수'는 1936or37년에 대한제국을 향해 '땅을 내놓아라'는 요구를 하게 된다.
11. 바짝 긴장탄 대한제국. 한소 국경에 병력을 전개하고 국내의 공산주의 세력을 때려잡는 공안정국. 덤으로 영국에게 지원을 요청하여 무기와 탄약을 비축하는 데에 전력투구.
12. 소련은 느긋하게 준비를 마친 다음 대병력을 투입, 두만강을 건넌다. 시기는 봄. 덤으로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던 소련 해군도 동해 해안선을 따라 포격을 가한다.
13. 영국한테 육전을 배운 대한제국군과 대숙청 이후 개판이 된 소련군의 대결. 낯선 땅, 낯선 전장에서 완강하게 저항하는 대한제국군에게 소련군은 적지 않은 희생을 내고 진격은 지지부진. 덤으로 별다른 성과 낼 거리가 없어서 손가락만 빨던 대한제국 해군과 공군(영국 영향으로 독립된 공군의 모양세나마)이 블라디보스토크를 공습, 소드피쉬로 소련 함선 2~3척을 골로 보내는 데에 성공한다. 양측 다 전차는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도로망과 산악지형으로 인해 움직이는 토치카 역할 외에는 힘을 쓰지 못하고, 결국 전형적인 보병 전투와 기병전투가 벌어지게 된다. 결국 전쟁 첫 해 겨울은 밀고 밀리는 고지전으로 전개되어버려 양측, 특히 공격 측인 소련군에 막대한 인명 피해만 남기고 다음 해를 맞이하게 된다. 덤으로 대한제국군이 아주 힘겹게 동해안 축선까지 끌고 간 mk.1 보병전차들이 집단 운용되어 소련군을 몰아붙이는 일도 있었지만 급히 출동한 러시아 해군의 함포 사격으로 인해 공세가 무산됨.
14. 강철의 대원수께서는 동북아시아 벽촌에서 당한 개망신에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휘하의 장수(...)들을 나무라지만, '유능한 사람은 네가 다 죽여버렸잖아!!'라는 일갈에 침울해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15. 국제연합에선 소련의 침략에 대한 비난이 가중되지만 소련은 묵묵부답. '빨괭이(...) 집단의 공격에 영웅적으로 저항하는 동아시아의 소국'이라는 이미지에 경도된 의용군이 각지에서 모여듬. 모험을 찾아오거나 혹은 이념적 이유로 소련과 싸우기로 결심한 미국, 혹은 북유럽 및 동유럽 출신자들도 있었고, 개중에는 일본인도 상당수. 덤으로 아주 소수지만 러시아 제국의 백군 출신 군인들도 섞여 있었음. 영국은 미국을 채근하고, 미국은 M3경전차와 버팔로, 더글라스 데버스테이터 뇌격기, 75mm 야포 등을 판매, 혹은 공여한다. 여기에 영국은 급히 블렌힘 폭격기 20대를 공여하여, 블렌힘이 대한제국 최초의 폭격기가 된다.
16. 소련은 사령관을 게오르기 주코프로 갈고, 대량의 전차, 화포, 항공기를 집중시킴과 동시에 소드피쉬에게 쫄아 있던 우세한 해군력을 이용해 전황을 타개하려고 함. 그리고 소련군의 춘계 공세 시작. 대한제국군의 신들린 방어 때문에 양측 다 큰 희생을 내지만 소련군은 점차 익숙해지는 제병 합동작전의 위력으로 함경도 일대에서 무려 1년을 끌었던 소모전 국면을 타개하는 데에 성공하고, 한반도 동북면을 석권함. 주코프의 위상이 크게 올라가는데, 방심한 서탈린 대원수는 주코프를 모스크바로 소환하고 군에 휴식 명령을 내리는 실수를 저지름.

17. '원산, 원산을 보자!'라는 강철의 대원수의 요구에 주전론과 주화론이 갈린다. 그러나 겨울 초입에 원산 북쪽에서 벌어진 전차전에서 M3로 구성된 대대를 주축으로 한 지상군이 제대로 된 일격을 먹이고, 공군과 해군이 긴밀한 협조로 소련 해군을 향해 어뢰 공격을 가해 피해를 입히고 북쪽으로 쫓아내는 데에 성공한다. 대대적인 역습에 직면한 소련군은 대한제국군이 했던 것 마냥 진지 방어전으로 전환하지만 보급의 어려움으로 인해 점차 후퇴하게 된다.
...꼐속?







덧글
개발부장 2009/08/20 15:22 # 답글
...어디서 많이 보던 전개가...;;;어떤 의미에서는, 현대 대한민국은 초시공범죄 없이라면 상당히 이상적으로 전개된 상황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알츠마리 2009/08/20 17:30 #
...음. 별로 이상적이진 않다고 생각해요.-_-; 좀 덜살아도 좋으니 마음이 좀 더 편한 곳이면 좋겠습니다.
이네스 2009/08/20 17:49 # 답글
그래도 현실보단 덜 시궁창스러울듯하군요. ㅡㅡa
알츠마리 2009/08/20 20:56 #
저러다가 추축군 참가하면 소련과 미국에게 한대 두들겨맞을 것이고(...), 안한다고 치면 독소전쟁 때문에 영미의 지원이 끊길 수밖에 없겠지요.-_-; 이래저래 한반도 동북부의 항구는 소련 손으로 들어갈 것이고, 그 다음에는 뭐 이럭저럭... 다만 지금처럼 국민소득이 2만불이 되는 나라로 발전하기는 어려울 것 같기도 합니다.그래도 덜 뒤틀려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deokbusin 2009/08/25 02:11 # 삭제 답글
처음 뵙겠습니다.1. 1907년부터 1912년까지 일본육군이 평시예산에다가 추가로 그냥(...) 말아먹은 돈이 현역사단 네 개를 만드는 규모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돈을 말아먹을 곳이 딱 한 곳 있죠. 바로 대한제국인데, 그 정도 덩치의 돈을 말아먹으면 대한제국민들이 일제봉기를 해도 어떻게든 진압은 할 수 있습니다.
저라면 1904년에 일본군이 여단병력을 한국에 상륙시켜서 대한제국의 중립파기를 강요할 때 고종이 군대를 총동원해서 일본군을 몰아내는 안을 채용하겠습니다. 이 편이 대한제국이 살아남을 가능성이 1907년의 봉기보다는 훨씬 더 높습니다. 국제적 시선이 몽땅 만주의 전쟁에 몰린 때라서 만주 인근의 나라인 한국의 주장(...)에 러시아를 동의시킬 가능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2. 1907년이라면 러시아는 발칸방면에 관심을 모으느라고 극동에는 관심을 기울이지도 않습니다. 이 시기의 러시아의 극동정책은 그저 남아있는 이권이나 잘 간수하자는 쪽이지요. 아니, 러시아가 만주, 장강이북, 한반도를 먹어치운다고 관측한 러일전쟁전 일본이 지레짐작으로 넘겨짚은 겁니다. 이미 1899년에 러시아가 영국에게 장성이남으로는 진출하지 않겠다고 약속해버렸거든요.
그러니 설령 1907년의 봉기가 이루어져도 러시아가 적극적으로 참여할 가능성은 없고, 설령 봉기가 기적적으로 성공해서 일본이 한반도에서 축출되어도 러시아가 한반도에 혓바닥을 낼름거릴 가능성도 없습니다.
고로 대한제국이 러시아의 영향권 안으로 편입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외려 미국이 일본의 공백을 메우려고 한국으로 비집고 들어올 가능성이 더 높을 겁니다.
알츠마리 2009/08/25 21:11 #
음. 별로 진지하게 쓴 글은 아닙니다.(...) 사실 원래 목적은 어떤 대화에서 반 농담삼아 나온 상황을 이용, WW2의 영국군스런 한국군과 초창기 소련군의 대결구도를 내는 것이었으니까요.-_-;덤으로 저당시 국제정세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도 하고... 굳이 '저 상황의 타당성'에 대한 근거를 대자면 러시아 황제가 일본 낭인에게 칼빵을 맞았다는 정도랄까요. 덤으로 대한제국군도 알려진 것보다 약하지 않은 존재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