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fs Sprechchor


그냥 생각한 바를 적은 연습글(?) - 화제의 법안에 부쳐. 나름 철학적 망상


두 개의 유령이 대한민국을 떠돌고 있다. 오만과 편견이 그것이다.

이 법안의 등장은 채 성숙하지 못한 아이들이 끔찍한 성폭행을 당한 일련의 사건들에서 기인한다. 상식과 양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공분하지 않을 수 없는 사건들이었으며, 가해자들에 대한 무거운 처벌을 주장하는 여론이 들불처럼 번졌었다.
그렇다. 이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분노해야 할 일이며, 그런 일들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은 국가와 사회 모두에게 있어서 중요한 책무인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이 그런 비극적인 사건들의 재발을 막는 유효한 수단이란 말인가 하는 점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수단을 강구하는 이들에게 여러 가지 원인이 제기되었으나, 그 중 가장 행동적인 이들에게 있어서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진 설명은 이른바 '서브 컬쳐'의 산물, 즉 게임, 만화, 애니메이션, 웹툰, 성인물 등이 인간의 심성을 타락시켜 악덕에 대한 경계심을 무디게 하고, 그 때문에 선을 넘는 이들이 생겨난다는 것이었다.
그 설명을 따른다면, 사건들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그러한 '서브 컬쳐'의 산물을 일반 대중으로부터 떨어뜨려 둘 경우 심성이 타락하지 않을 것이고, 악덕에 대한 경계심도 유효할 것이며, 선을 넘는 이들도 줄어들 것이다.
이러한 설명이 타당하다고 한다면,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된 '서브 컬쳐'의 산물을 생산하는 쪽을 규제하고, 소비하는 쪽을 처벌하는 당 법안은 충분히 효력을 발휘하여 앞서 언급했던 류의 비극을 재발하지 않도록 할 수 있을 것이고, 이는 공공복리에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된다.

하지만 바로 이러한 시각에 오만과 편견이 가득하다는 것을 깨어 있는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도록 하자.
부모님 세대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 중에는 이런 것이 있다. '옛날부터 동네마다 미쳐서 돌아다니는 여자들이 꼭 하나씩은 있었다. 그런 여자들 치고 임신을 하지 않은 사람이 드물었다.' 아이의 아버지는 누구인가? 60년대에 컴퓨터 게임, 폭력적인 만화, 일본 애니메이션, 인터넷에서 연재되는 웹툰, 상당한 규모의 성인물 시장이 존재했던가?
그저 옛날 이야기만은 아니다. 평생 '서브 컬쳐'를 소비한 경험이 없이 소박한 삶을 살아온 농촌에서 동네 남성들이 소녀를 강간하는 사건들이 여러 차례 일어났었다. 무엇이 그 동네의 중/장년, 심하면 노년의 남성들을 타락시켰는가? 게임? 만화? 애니메이션? 웹툰? 성인물? 우리는 안다. 그건 그들의 기호에 맞지도 않고, 있는 줄도 모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농촌을 예로 든 이유는 이른바 촌동네에 대한 편견 때문이 아니다. '서브 컬쳐'와 유리된 환경에서도 근래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류의 성범죄는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서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들의 선을 넘게 했다는 것인가라고 반문하는 이가 있을 것이다.

아동/청소년 대상의 성범죄자들이 선을 넘게 된 원인은 너무나도 간단하다.

첫째, 상대가 자신보다 약하다는 확신이 있고.
둘째, 상대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셋째, 그러한 확신 하에서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로 결정할 만큼 자제심이 없기 때문이다.

동네를 배회하는 미친 여자를 누가 남자들의 손길로부터 보호해 줬었는가? 알게 뭔가. 그녀는 그렇게 살다가 어느 날 자빠져 죽을 것이고, 애를 만든 것은 어느 걸신들린 놈팽이겠지. 설마 내 남편이나 아이는 아닐 것이다.
부모로부터 버림받아 친척 집에서 길러지는 여자아이가 일부 선을 넘은 친척 남성들의 폭력에 적극적으로 맞설 수 있는가.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가 밥이라도 먹고 사는 것은 그 친척 때문인데, 스스로의 손으로 밥줄을 끊을 수 있는가? 자신으로 인해 누군가가 법의 처벌을 받은 집안에서 어떻게 머물 수 있을까?
학교도 마찬가지다. 상대가 자신보다 약하다는 확신을 가진 학생들이 피해 학생들을 겁박한다. 이는 놀랍게도 어린아이들 답지 않은 지극히 냉정한 계산에 기인한다.
교사들은 무관심하다는 확신. 그리고 설령 교사들이 알더라도 자신의 부모가 자신을 어찌 되게 내버려두지 않을 거라는 확신. 청소년에 대한 법의 보호 때문에 심각한 불이익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학교가 위신-그런 것이 처음부터 있었다면 말이지!-을 위해서 문제를 크게 키우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이러한 확신들의 총합이 피해 학생에 대한 보호가 자신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는 확신의 크기를 넘어서는 순간 아이들은 선을 넘어 자기 앞에 놓인 약한 동물들을 두들겨 패고, 가진 것을 빼앗고, 범한다.

이러한 사실이 보여주는 결론은, 너무나도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그 사람들에게는 불편하게도 이렇다.

'욕구는 남들 만큼 가졌지만, 자제심이 약한 개인 앞에 어떤 사회 환경적인 요인으로 인해 보호받지 못하는 먹잇감들이 던져졌다'는 것이다.

동네를 배회하던 미친 여자가 적절한 시설에서 보호받고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면 임신한 채로 자신의 처지도 모르고 동네를 헤메이고 다녔을까?
부모가 자신의 딸아이를 끝까지 챙겼다면 낯선 친척집에서 푸대접 받으며 험한 일을 당했을까?
교사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고, 학부모의 일방적인 편애에 맞설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법이 범죄에 대한 온당한 처벌을 가하고, 학교 조직이 자신의 위신이 진정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가를 명확히 인지하고 있다면 자제심 약한 가해학생들이 그렇게 쉽게 선을 넘을 수 있었을까?

여기서 우리는 '주류', 혹은 자신이 '주류'라고 착각하는 그 적극적인 사람들의 오만과 편견을 발견하게 된다. 자신들이 지금처럼 행동하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오만이고, '서브 컬쳐'에 그 혐의를 돌리는 것이 편견이다.

오만에 대해 좀 더 설명해보자. 사회가 지금보다 몇 배나 더 엄숙하던 옛날에도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은 언제나 폭력 앞에 노출되어 있었다. 이는 사람에게서 결코 거세할 수 없는 욕망에서 기인한다. 그것이 재산에 대한 욕구, 권력에 대한 욕구같이 좀 더 '사회적'인 측면이 있건, 성욕처럼 본능적인 것이건 그 작동 원리에는 별 차이가 없다.
그렇다면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에 대한 보호를 행하는 것이 사태를 해결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왜냐하면 욕구를 갖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에, 인간이 정신만으로 이뤄진 어떤 다른 존재가 되지 않는 이상에는 결코 뗄래야 뗄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법안'은 정작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에 대한 보호에 중점을 둔 것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욕망을 거세하는' 쪽에 중점을 맞추고 있다. 댐에서 물이 새는 것을 막기 위해 댐을 보수하는 것이 아니라 물길 자체를 돌려버린다는 식의 발상이다. 이렇게 오만하기 짝이 없는 발상은, 당연히 그 노력은 몇 배나 들겠지만 원하는 결과는 내지 못할 것이다.
제아무리 규제를 해봤자 '서브 컬쳐' 컨텐츠에 대한 욕구는 존재하고, 법을 피한 새로운 대안들이 등장할 것이기 때문에 본래의 규제 대상을 막는 것도 힘들 것이다. 무엇보다도 '법안'은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에 대한 보호를 결여했으니 법안이 있건 없건 성범죄를 당할 약자는 당할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을 위한 '법안'인가?

여기서 편견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생긴다. 사람들이 질리도록 지적해왔지만, 한국 사회 내에는 뿌리깊은 편견이 자리하고 있다. 취미생활에 대한 거의 증오에 가까운 편견이다. 물론 여기서 자유로운 것들, 그러니까 대중적으로 인정받고 익숙한 것들은 이미 다수가 존재한다. 영화, 음악, 미술, 우표수집, 독서, 등산, 골프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자유롭지 못한 것들도 존재한다. 만화, 애니메이션, 웹툰, 게임이다. '법안'을 주도하는 이들의 뇌리에는 개발시대적 사고방식, 즉 이러한 서브컬쳐의 산물들이 아이들의 공부를 방해하고 시간을 낭비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인식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한 듯 보인다.
아동과 청소년에 대한 보호는 거기에 붙은 옵션과도 같은 것이다. 해당 분야들은 이미 오랫동안 무슨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된서리를 맞아야만 했으며, 해당 업계 종사자들 또한 날선 편견에 시달려야만 했다. 이들의 처지는 지금은 당당한 '주류'로 인정받는 영화/음악인들이 1950년대 이전에 어떤 취급을 받았는가를 상기하게 만든다. '딴따라'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만 했던 당시의 예술인들은 결혼과 같은 개인이 응당 누려야 할 행복조차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바로 사회에서 방탕하고 놀기 좋아하는 쓸모없는 족속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그들을 대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적 사고방식, 즉 예능인들을 천하게 여기던 인식이 불과 40~50년 전까지만 해도 이 땅에 만연했었다. 새로운 매체가 등장하면 사회가 그에 적응하는 데에는 응당 시간이 걸리게 마련인 것이다. '대중음악? 그게 그냥 노래 부르는 거랑 뭐가 다르지? 영화? 떠돌이 남사당패 같은 건가. 그럼 우리처럼 제대로 사는 사람들보다 못한 거네.'
하지만 세계화니 국제화니 하는 작금의 현실에, 사회가 적응하는 속도가 느려서 생기는 불이익은 점점 커지기만 한다. 한류 스타들이 외화를 벌어들이고 한국 문화를 수출하는 역군이라며 칭송받는 그늘에서, 그들보다 훨씬 큰 산업 규모를 가지고 있으며 중국/북미 등지에도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있는 게임 산업 종사자들은 아직도 '놀면서 일한다'든가 아이들을 타락시키는 주범 정도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이 얼마나 억울한 낙인인가.

'법안'은 이렇듯 발안자 및 시대에 뒤떨어진 '주류'의 오만과 편견을 그대로 '반영'하여 '실행'하면서 산업 분야의 직접적인 피해, 그리고 표현의 자유 및 성인의 자기 행동에 대한 결정권까지 침해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아니할 수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발안자들이 선을 넘고 있으며, 그 이유가 다음과 같다는 점에 있다!

첫째, 상대가 권력자인 데다가 '주류' 여론의 뒷받침을 받는 자신보다 약하다는 확신이 있고.
둘째, 상대가 단합되지 않고, 언론이나 조직의 비호를 받지 않아 보호받지 못한다는 확신이 있고.
셋째, 그러한 확신 하에서 자신의 믿는 바를 밀어붙여 타인이 하는 바를 강제하고자 하는 권력욕을 자제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성범죄자 같은...... 아니, 말조심하자. 국민을 바른 길로 계도하겠다는 숭고한 뜻을 가진 선각자들이시니까.



어느 순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을 보호해야 할 때 엉뚱한 데에 에너지를 쏟은 이 법안이, 결국 아무 것도 바꾸지 못했다는 현실을. 아마 만든 사람들도, 대다수 국민들도 그때쯤 되면 이 법안의 존재에 대해선 아무 관심도 없겠지만.

아니, 한 가지는 바뀌어 있을 것 같다. 막 싹이 피려던 새로운 분야의 산업이 오만과 편견에 의해 꺾여 버리고 후발주자에게 모든 것을 내준 미래 말이다.


덧 - http://artzmari.egloos.com/2772464 이 포스팅의 몇 부분이 너무나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1. .....바보스러운가? 미개한가? 무의미한가? 아니야, 조금도 무의미하지가 않아. 이것이 다름아닌 <설득의 수단으로서의 테러>인 것이다. 이런 속담이 있지 않은가- 서툰 총질도 많이 쏘면 맞는다! 여하튼 쏘아대면 언젠가는 쏘아 떨어뜨릴 수가 있어. 대량 테러의 의미가 우선 거기에 있었다- 한 사람씩 잡아서는 절대 잡히지 않는, 숨어 있는 거물이 걸려들어 죽게 되는 것이다.


#2.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했다. [국가가 시민을 범죄인으로 만들 때는, 자기 자신을 해친다.]






덧글

  • ㅈㅅㅈ 2012/11/19 11:49 # 삭제 답글

    칼군이 나오는 그거 63화 나왔나(...)하고 들어온 저를 부끄럽게 만드는 글이로군요. 전 아청법이나 여가부 욕하면서도 이런 고찰은 안했는데 말입니다
  • 알츠마리 2012/11/19 21:22 #

    아니 부끄러워 하실 필요는;;; 좋은 평 감사합니다.

    이건 뭐 진짜 탈레반 치하도 아니고, 어쩌면 팬픽도 내려야 되는 거 아닌가 모르겠습니다.-_-;
  • ㅈㅅㅈ 2012/11/20 08:59 # 삭제

    그 정돈 아닐 겁니다. 이 법보다 훨~ 씬 욕을 덜먹은 인터넷 실명제조차도 5년인가를 넘기지 못했는데... 금주법등의 선례를 보면 이 법의 생명력이 결코 길래야 길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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