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누나를 사랑한다 (92) + 연재 관련 공지 ㄴ소년은 누나를 사랑한다

철갑상어낚시작전, 즉 마씨니 공략전은 이번 전역에서 우리 공화국 육군이 설정한 최종 목표였다. 마씨니는 아타만 육군의 대륙 교두보인 동시에 아타만 해군이 북해 양안을 통제하기 위한 필수적인 발판이며, 아틀리아 자치령 내 최대의 도시이자 아타만 본토에의 식량 수출항이기도 했다.
중세와 근세 사이, 북해의 패자였던 아타만 제국은 그때에 비해 많이 약해졌지만, 여전히 열강의 말석에 들어 있는 나라였었다. 하지만 마씨니를 잃는다면, 아타만 제국이 대륙에 미치는 영향력은 현저하게 감소한다. 지상군을 안정적으로 투입할 교두보가 없어지기 때문이었다.
그것보다 더 큰 문제도 하나 있었다. 아타만 제국은 전통적으로 추운 기후 때문에 식량 사정이 좋지 못했다. 아틀리아 자치령의 비옥한 농토를 상실함으로써 그들의 식량 자급률은 낮아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국내의 불만을 통제하기 어려워질 터였다. 당장 우리 대대가 아틀리아 자유국 영내에서 작전할 때 마주쳤던, 정치범 출신 무전병들을 떠올려 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동맹국이지만 서로 좀 고깝게 보는 사이인 연합왕국에 손을 벌리든지, 아니면 에쉬르 제국 시절부터 서로의 감정이 매우 나쁜 서부연방에 우호의 신호를 보내든지, 그것도 아니면 아틀리아 자유국, 혹은 우리 공화국에 대한 적대를 중단하고 식량 무역을 해달라고 부탁하든지... 어느 쪽이든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그들에게 있어 마음에 드는 선택지는 아닐 것이다.

기동집단 아틀리아가 마씨니를 세 방향에서 포위하고, 남동쪽의 22군단이 승승장구 하고 있는 와중에, 우리 군 측에선 마씨니의 아타만 군 방어 책임자와 도시 내 민간인의 처우에 관한 협상을 진행했다.
그 사이 우리 대대는 무엇을 했느냐...하면, 우선 우리가 점령한 언덕은 포병에게 넘겨줬다. 2식 경전차 차대의 105밀리 자주포들이 도착하면서, 포병은 시가가 잘 보인다는 이유로 언덕에 관측 진지를 차렸다.
언덕을 넘겨준 뒤 마씨니 포위망의 북서쪽으로 이동해 자리를 잡은 우리 대대는, 1중대는 아직까지 마씨니 포위망에 합류하지 못하고 행군 중인 산악엽병 부대의 수송에, 그리고 우리 2중대는 포위망에 투입했다.
이미 말했듯이, 트럭이 기계화 부대인 KG<엘리자베트>가 사용하는 물자 수송에 투입되면서 병력이 이동하는 데 쓸 차량이 부족했기 때문에, 일리야 중령은 투덜거리면서도 산악엽병들을 지원하는 임무를 명령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1중대 장갑차들은 내부 뿐 아니라 외부에도 병사들을 잔뜩 태우고 아틀리아 자유국 영내와 마씨니를 왕복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뭐, 사실 얼마 뒤에 시작될 시가전 때문에 보병이 필요한데 트럭이 일시적으로 모자라게 되어 생긴 일이니 그렇게 웃을 일은 아니지만... 투입되는 당사자들 입장에서는 조금 맥이 빠지는 건 어쩔 수가 없겠지.
아무튼, 1중대가 그런 임무를 받아 움직이기 전 협상은 끝나서, 5만여 명에 달하는 마씨니의 민간인들을 도시 밖으로 피난시키는 것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다.

“...저거 보통 일이 아니겠는데요?”
“그러게.”
퇴거하는 민간인들이 마씨니 밖으로 열을 지어 나오는 것을 보며, 페기는 걱정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나도. 저 5만여 명의 사람들을 어디다 수용하고, 어떻게 먹일 것인가? 또한 수용할 장소까지 어떻게 데려다 줄 것인가?
민간인들이 군대와 군대 사이에 치여 피해를 입는 사태를 피한 것은 다행이지만, 끝도 없이 걸어 나오는 노인, 여성, 아이들을 보다 보니 그런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안 그래도 비상이 걸렸습니다.”
장갑차 옆쪽에서 익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중대장님...”
“저 사람들이 걱정되나요?”
어느새 나타난 네리아 중위가 날 보고는 살짝 웃으며 물었다.
“...네.”
민간인들이 죽고 다치는 광경을 보는 건 브렌네르와 테모르필 만으로도 충분하고도 남는다. 지금 나오는 사람들도 우리 쪽에서 제대로 조치를 취하지 못하면, 야외에서 일교차가 큰 날씨에 노출되고 만다. 젊고 건강한 사람들이라면 모르겠지만, 노약자들은 병에 걸리기 딱 좋은 환경이리라.
“중대장님, 1중대가 병력 수송 중이니 우린 민간인들을 수송하면 안 되나요?”
페기가 네리아 중위에게 그렇게 물어 보았다.
“왜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죠?”
Ya, 혹은 Nein을 기대했을 페기는 의외의 질문에 조금 당황했는지 뺨을 긁적이더니,
“음...마더(Marder)가 사람을 많이 태울 수 있고, 지금 우리는 당장 할 일이 없으니까...면 안 될까요?”
그녀다운 상냥한 의견을 냈다.
“아인,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그리고 페기에게 칭찬, 혹은 부정을 할 거라고 생각했던 나는 의외의 표적 전환에 당황해서 뺨을 긁적이다가,
“음...페기의 말도 맞지만, 지금 우리가 대대에 한 개 남은 전투중대니까, 대대 전체가 뒤로 빠질 게 아니라면 대기해야 하겠죠.”
생각나는 대로 대답을 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마음 가는 곳을 억누르고 대답을 했다고 하는 것이 옳겠다.
“그렇군요.”
네리아 중위가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럭저럭 먹히는 대답이었나?
“대대장님은 생각이 다르신 것 같지만요.”
“...네?”
일리야 중령은 왜? 의아해하는 내 얼굴을 보고 있던 네리아 중위는, 살짝 웃으면서 말했다.
“대대장님 호출입니다. 아인. 앤 하사와 같이 대대 본부로 가죠.”
나도 모르게 페기를 바라보니, 그녀 역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목소리는 내지 않았지만, 우리 둘은 동시에 똑같은 입모양을 만들었다.

‘또?’ 라고.

그렇다. 우리 2소대에는 ‘또’ 별도의 임무가 떨어졌다.
“수색 임무...입니까?”
“그래.”
일리야 중령은 여느 때와 같은 표정-즉, 불만인 표정 -을 짓고선 마씨니 주변 지도 앞으로 몸을 옮겼다. Ia 마야 대위는 날 보고 고생한다는 듯 슬쩍 웃어 보이고선 다시 타자기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네리아 중위는... 음. 어째서인지 평소와 달리 무표정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임무는 간단하다. 우리가 이 언덕을 점령한 것과 마찬가지 이유로, 마씨니 서쪽의 해안을 한 번 둘러봐야 할 필요성이 있다. 이쪽 해안은 마씨니의 항구와 그 근처를 제외하고는 단애(해안, 하천가의 급경사지)가 발달한 곳이 많아서, 적의 관측조가 숨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
적이 중포가 있고, 관측조가 준비하고 있다면 도시 주변의 포위가 공고해지기 전에 이미 사격을 가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지형이 복잡한 곳에서는 언제 뭐가 튀어나올지 알 수 없다는 것은, 알데인 소위의 말에 타고 있을 때 뼈저리게 느낀 점이었다.
“이 지점, 그러니까 경계진지로부터 여기까지다. 해안 단애가 푹 들어가는 곳. ...그리고 더 중요한 이야긴데, 항공정찰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여기, 이쪽에 해안포대가 하나 있다. 우리 해군이 연안을 휘젓고 다니는 동안에 이 녀석들이 뭔가 한 적은 없는 것 같다고 하지만, 그래도 병력이 없다고 장담할 수는 없겠지. 그러니 뭔가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바로 보고하도록. 일단 휴전 중이기도 하니까, 여차하면 1소대와 3소대도 보낼 수 있다. 그러니 위험을 무릅쓸 필요는 없다. 질문할 것은 없나?”
“저기...”
일리야 중령은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있었다는 듯 내 말을 끊고 대답했다.
“왜 2소대냐고? 1중대가 병력 수송한다고 왕복 중인 지금, 2중대가 내 손에 쥔 유일한 전투중대인데, 그 중에...”
“...가장 응집력이 떨어지는 소대라서...군요.”
나름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말이지. 살짝 기가 빠져 낙담하고 있으려니, 일리야 중령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알면 됐다.”
그때, 네리아 중위가 끼어들었다.
“아인 소위를 보내는 김에, 해안 초소를 설치할 장소도 좀 알아봤으면 합니다.”
“이유는?”
“우리 해군과 공군이 제공권 및 근해의 제해권을 장악한 상태지만, 야간에 적 함대가 치고 빠지는 것까지 방지하기는 힘들 테니까요. 또, 아직까지 이야기는 없지만 연합왕국 해군이 개입할 경우, 그 녀석들이 자랑하는 해병대 코만도들의 침투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연합왕국과 아타만 제국은 매우 가까운 사이니까, 그런 식으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도 있겠구나.
여태껏 상황설명에서 연합왕국 이야기가 나온 적은 거의 없었다. 그들이 아틀리아 반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전역을 주목하고 있는 것은 명백했지만, 당장 전면개입을 택하기에는 뭔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만약 그들이 개입한다면?
연합왕국의 제해권은 전 세계에 걸친 것이고, 전함과 항공모함 같이 원거리에서 날리는 타격 수단뿐 아니라 해병대, 그리고 침투공작의 달인으로 이름 높은 코만도 부대까지 갖춘 그들의 해군은 원한다면 어디든 때릴 수 있다. 아틀리아 반도 일대는 물론, 우리 공화국의 남부 해안까지. 아니, 둘 다 동시에 건드릴 수도 있겠군.
물론 지상에 상륙해서 결정적인 도움을 주는 것은 해군만으로는 안 될 일이지만, 그래도 그들이 그럴 수단이 있다는 것 자체로 부담이 된다.
예를 들어, 네리아 중위 말대로 연합왕국이 소수정예로 핵심 시설을 타격하고 소리 없이 빠져나간다는 코만도 부대를 투입하기로 했다면, 그렇게 큰 준비도 필요 없을 것이다.
세계 곳곳에 퍼져 있는 함대에서 구축함 한 척만 수배해 이 인근 해안에 몰래 침투시켜, 보트로 상륙, 마씨니 공략에 바쁜 우리 진중에 침입해 지휘소나 탄약, 연료를 모아둔 곳을 파괴한 뒤 유유히 빠져나간다면 어떨까?
대세를 뒤엎을 수는 없어도, 발목잡기 정도는 될 것이다. 물론 큰 그림에서 봐서 ‘발목잡기’라는 것이고, 당하는 입장에서는 사람이 죽는 일이다. 가볍게 볼 수 없다.
일리야 중령은 Ia 마야 대위와 시선을 교환했다. 마야 대위가 살짝 웃으며 어깨를 으쓱하자, 일리야 중령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다. 위에 이야기해두지. 단, 그건 다른 쪽에 맡기도록 하자. 해안경계는 굳이 우리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고. 네리아, 아인. 본부중대에 미리 이야기해뒀으니, 연료와 탄약 받는 대로 임무를 수행하도록.”
“알겠습니다. 서쪽 해안선 및 해안 포대 수색 임무, 수행하겠습니다.”

먼저 방문(?)한 곳은 해안포대였다. 구식이지만 그래도 상당히 큰 편인 234mm 곡사포가 3문, 그러니까 1개 포대가 있다고 되어 있었는데...
“...아무도 없습니다.”
일리야 중령이나 네리아 중위도 이미 알고 있었겠지만, 사실 항공정찰에 걸릴 정도로 노출된 시설물이라면 공군이 가만히 내버려두었을 턱이 없었다.
커다랗고 굵은 해안포들은 이미 고철이 된지 오래였고, 사람의 모습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앤이 앞장서서 내부로 들어갔지만, 계단을 내려가 한 모퉁이를 돌자마자 천장이 무너져 막혀 있는 통에 더 들어갈 방법이 없었다. 꺼내놨던 포야 다 날아갔지만, 철근 콘크리트로 지은 구조물 자체는 폭격을 받긴 했어도 비교적 멀쩡했는데,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서 그런 모습이 됐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포대원들이 유기한 걸까요?”
“해안포대에 포가 없는 이상에야 더 이상은 지킬 이유가 없으니, 이미 다들 마씨니로 들어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의문에 버지니아는 그런 추측으로 답했다. 하긴, 그야말로 본진에 병력 한 명이 아쉬운 판일 테니까.
“그렇겠군요. 그럼 이 주변을 조금만 더 둘러보고 나서, 해안선 수색을 계속하도록 하죠.”
그래도 아타만 기병들에게 크게 데었던 나로서는 경계를 풀 수는 없었다.

“저건 뭐야.”
[이런 데에 무슨 집이...]
길을 따라 더 서쪽으로 20분 정도 갔을까? 단애 위쪽의 조금 평평한 지형에 웬 담장이 보였다. 담쟁이넝쿨이 덮인 오래된 돌담이었는데, 그 뒤로는 옛날 양식의 지붕이 슬쩍 드러나 있었다. 건물 주위로는 나무들이 잔뜩 심어져 있어서, 남쪽에서 접근했었다면 집이 있는 줄도 몰랐을 것 같았다.
“둘, 정지. 코니, 정지!”
-끼익-!
소대를 멈추고 나서, 우선 주변을 둘러보았다. 집 주변에 나무들이 어느 정도 심어져 있는 것 외에는 키 작은 수풀이 대부분에, 지형도 오른쪽, 그러니까 해안 단애 쪽을 제외하면 그렇게 복잡하지 않아 보였다.
“...이런 데에 민가가 있는 건가?”
[포대 대원들이 숙식을 해결하는 건물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버지니아가 그렇게 말했다. 확실히, 아까 지나쳐 온 해안포대의 경우 내부에 침실이 있거나 할 정도로 커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포 세 문을 운용하는 데에 1개 소대 병력 정도가 필요하다고 가정할 때 그들이 기거할 곳이 필요할 건데, 해안포대 뒤쪽으로는 그런 게 없었다.
“...일단 보긴 봐야겠군요.”
뒤를 돌아보니, 앤이 어떻게 할까 묻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으음. 사실은 내가 묻고 싶은 말이지만.(...)

함정일 가능성에 대비해, 최소한의 인원만 내려서 그 집을 살피기로 했다. 앤의 2호차는 아예 집의 남쪽에서 기관총 사격 준비를 시켜둔 뒤, 1호차에서 코니와 페기만 남고 나, 레미안, 그리고 버지니아가 내렸다. 버지니아는 만약에 대비, 기관단총을 들고 집 뒤편 담장을 넘어 들어가고, 나와 레미안은 집 마당으로 들어섰다. 혹시 몰라 소총을 들고 있긴 했지만, 만약 이 집 안에 아타만 병사들이 있다면 당장 몸을 빼야겠지?(...) 그렇게 생각한 나는, 레미안보다 좀 더 앞쪽으로 가서 집 안을 살폈다. 근처에 농경지도 없는 것 같던데 도대체 뭐 하는 집일까 궁금해 하면서 안쪽을 보니, 테모르필에서 잤던 집과 크게 다르진 않은 호빗들의 살림살이가 보였다.
그때, 레미안이 내 팔을 살짝 잡아당기며 물었다.
“저기, 이 집, 뭔가 이상하지 않아?”
“그래서 확인하는 거잖아.”
시큰둥하게 대답하자,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다시 말했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뭔가가.”
“뭐?”
총을 들고 뭐가 있는지 알 수 없는 벽에 기대 있으려니, 나도 모르게 말투가 살짝 거칠어졌다.
“뭔가 무서운 게, 이 집안에.”
“...뭐?”
의외의 말에 레미안을 돌아보았다. 놀랍게도, 그녀는 불안한 눈빛을 한 채 떨고 있었다. 그녀를 안 지 반 년 가까이 되어가지만, 눈밭에서 갇혀 있었던 그 때 외에는 보인 적 없는 표정이었다.
“적이 있다는 거야? 그걸 알 수 있어?”
“아니, 그런 게 아니야. 마력이...”
그러고 보니 레미안은 전술 마법사였다. 그렇다면 이 집 안에 뭔가 마력, 그것도 레미안이 이렇게 두려워 할만한 수준의 마력을 가진 뭔가가 있다는 이야긴가? 나야 레미안이 말하기를 마력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몸이라 했으니, 당연히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새삼 긴장해서 마른침을 삼킨 나는, 조용히 총을 고쳐든 다음 집의 문을 천천히 열었다. 아니, 열려고 했다.
“무...!!”
“레미안?! 어, 언제?!”
갑자기 레미안의 목소리가 들려서 놀란 내가 뒤돌아보자, 언제 나타났는지 긴 회색 옷을 입고 얼굴을 가린 사람 하나가 그녀의 앞에 서 있었다. 레미안이 뭔가 대처를 하려는지 그녀의 손끝에서 푸른빛이 일렁거렸지만,
-퍽-!!
갑자기 나타난 그 사람이 레미안의 배를 후려치자, 그녀는 꼼짝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한 박자 늦게 대응한 내가 소총을 그 괴한에게 겨누는 순간-

풍경이 갑자기 변했다.

애매한 장소. 애매한 시간. 어딘지 모르는, 하지만 두 번째로 보는 곳. 분명히 해가 중천이었는데, 하늘에는 빛이 보이지 않았고, 담쟁이덩굴에 덮인 담장도 어디 갔는지 알 수 없었다. 이건 꿈인가?
주변에 보이는 건 그저, 이 자리에 있는 것은 나와, 레미안을 쳐서 쓰러뜨린 회색의 괴한, 그리고, 어디선가 본 적 있는 여자아이 뿐. 레미안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는 내 앞에, 여자아이가 다가와 섰다. 내 가슴께에 오는 키, 갈색 머리, 청록색 눈.
“너는...?!”
나는, 그래. 그녀의 이름을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지에 가득 찬, 하지만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알 수 없는 빛나는 청록색 눈만이 내가 그녀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줄 뿐.
“흐음, 우연 치곤 희한하네. 아틀리아 땅에서 이렇게 또 만날 줄은 몰랐는데.”
“윽...!”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 내 팔을 꺾어서 내리누른다. 긴 회색빛 옷을 입은 그 ‘누군가’겠지.
“그쯤 해 두렴. 가엾지 않니.”
“알겠습니다.”
여자아이가 손짓을 하자, 등을 내리누르던 감각이 사라졌다. 눈치를 보며 천천히 몸을 일으키자, 그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여자아이는 배시시 웃으면서 말했다.
“뭐, 그 정도의 인연이면 이렇게 다시 볼 수도 있는 거겠지. 그나저나 너도 어지간하구나? 뭔가 사정이 있어서 그렇게 입고 있는 것 같은데, 여자들만 우글거리는 곳에서 들키지도 않고 잘도 버티고.”
“...잠깐. 지금...!”
내가 남자라는 걸 알고 있어?!
“으응~ 으응. 이 일은 이래서 재미있단 말이지. 이렇게 보니 도대체 네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긴 하네. 마침 여기 일도 끝났으니 한 번 알아보러 갈까나?”
“무슨...!! 잠깐만! 당신 도대체 누구기에...!!”
뭔가 물어보려고 했지만, 그 여자아이는 지난번처럼 자기 할 말만 하더니, 내게 다가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다음이 있다면, 또 보자꾸나. 그러니 지금은 한숨 자 둬. 참, 친구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다.”

그녀의 손이 내 이마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뭔가 정신없는 광경들이 목소리들과 함께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며 빠르게 휙휙 지나갔다.

수색 결과 별다른 이상이 없습니다. 네...............곧 휴전이 끝나겠네. 우리 대대는 시가전에는 투입되지 않는다. 레미안, 뭔가 있었던 것 같은데. 모르겠어. 나도 머리가 좀 아프네. 지쳤나 보네, 무리하지 마..............예정대로, 공격이 개시된다. 우리 대대는 따로 할 일은 없다. 추가 명령이 있을 때까지 외곽에서 계속 대기한다. 푹 쉬어두자, 앤. 그러게요, 소대장님............. 펑! 콰쾅! 위이이이잉!! 적 지휘소가 날아간 것 같다는데............무전기 사용 주의해라. 아틀리아 자유국 무전기 주파수와 겹치는 대역에 적이 전파방해를 시도하고 있다고...........조사 결과 항구 입구에 착저해 있는 전함이 아직 살아서 전파방해를 시도한 것으로 판명..........공군이 2차 공격을 가해 완전히 침묵 시켰.........1중대는 아틀리아 국경경비대가 맡은 통로로, 2중대는........2소대는. 부상자를 실어 날라주세요. 알겠습니.......이런 맙소사. 도시 전체를 갈아엎은 것만 같아.......적이다! 쏴!!

뭐였을까.

“......”
고막을 두드리는 폭음. 그리고 나를 벽 쪽으로 날려버리는 폭풍. 하지만 그 ‘따위’ 것보다도 내 신경을 사로잡은 것은,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를 ‘깨달았다’는 감각이었다.
그래, 도대체 어디서 나왔는지, 차량 뒤쪽에서 튀어나온 녀석이 고장이 난 쪽문으로 수류탄을 집어넣었다. 순간적으로 아인 생각도 나고, 정말 다 죽었다 싶었는데 -
“다들 괜찮아?!”
“저, 전 괜찮아요!”
페기.
“코니! 코니가 어깨에 맞았습니다. 전 괜찮습니다!”
내려다보니 버지니아가 코니의 어깨를 감싸며 내게 외치고 있고.
“레미안!!”
“...나 아, 아직 안 죽었어.”
많이 놀랐는지 질린 표정을 한 레미안이 애써 침착하게 대답했다.
다행이다. 어찌어찌 운이 좋았던 건지, 아니면 수류탄 자체가 제식이 아닌 급조한 물건이나 불량품이었는지... 수류탄 파편에 맞은 사람은 코니 뿐 나머지는 무사했다. 다만, 차는 상태가 어떤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었지만 시동이 꺼져서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았다.
“참. 앤에게...”
뒤쪽을 돌아보고 앤을 향해 손을 흔들어 이쪽이 무사하다는 것을 알리려는 순간-
“소대장님!! 정면에 연막!!”
“와아아아아아아-!!!”
아아, 정신없어!! 급히 다시 포탑 위로 머리를 내미니, 정면에 연기가 자욱하게 깔리면서 함성 소리가 들려오는 게 아닌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까 전까지 잠에서 깬 것 같은 이상한 감각이 느껴졌던 것도 같지만 이젠 상관없는 일이었다.
“물러나라! 물러나!!”
갑자기 튀어나와 우리 차에 수류탄을 집어넣은 녀석을 쏴 죽인 산악엽병들은, 정면에서 수적으로 두 배는 넘는 적 보병들이 갑자기 나타나자 기세에 눌리고 말았다.
“페기!! 연막 너머로 쏴!! 버지니아, 레미안과 함께 코니를 2호차로 옮겨요!!”
“알겠습니다!!”
-투투투투투-!!
페기가 포탑을 수동으로 움직여 미친 듯이 기관총을 쏴대는 사이, 버지니아는 레미안의 도움을 받아, 어깨에 파편을 맞아 피를 흘리고 있는 코니를 들어내 2호차로 옮겼다. 난 그 사이 지도가방에 무선 규약표를 쑤셔 넣고, 내 총과 페기의 총을 챙겨 들었다.
“탄 걸렸어요!!”
갑자기 기관총 소리가 딱 그치고, 페기의 당혹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망설일 필요도 없지, 이건.
“내려!!”
포탑 밖으로 뛰어내린 페기에게 소총을 건넸다.
“소대장님!!”
적들은 어느 틈에 연막을 뚫고 다가오고, 2호차를 위시한 아군은 자칫 난전에 휘말릴까 뒤로 빠지고 있고... 거리를 보며 어떻게 할까 재고 있는데 어느 틈에 버지니아가 돌아와 있었다.
“저기로 들어가죠!”
자칫 잘못하면 적에게 둘러싸이게 생겼다 싶어 총을 챙겨 차 바로 옆의 2층 건물로 뛰어들었다.
-타타타타-!
건물에 들어서기 무섭게, 아타만 해군 복장을 한 적 두 명이 쫓아왔는데, 버지니아가 침착하게 기관단총을 쏴서 그 둘을 쓰러뜨렸다. 그 뒤로 발소리가 계속 이어지는 통에, 우리는 즉각 건물의 2층으로 올라갔다.
“페기! 창문 쪽으로!! 이상한 거 있으면 바로 말해!! 소대장님은 저와 계단을 막으시죠!”
이런 상황에 처한 건 처음이라 어떻게 할지 감이 오지 않았는데, 버지니아가 재빠르게 지시를 내렸다.
“아, 알겠어요!!”
버지니아와 함께 버티고 서서 계단 아래쪽에서 올라오는 녀석들을 막으려고 총을 들고 있는다. 폭격의 충격 때문인지 2층 지붕이 반쯤 날아간 집이라, 계단 난간도 다 부서진 상태여서 올라오는 방향을 뒤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뭔가 좀 안정된 자리 같아서 마음이 놓이는군. ...그렇게 생각하는데 갑자기 계단 아래에서 뭔가 검은 공 같은 것이 쑥 튀어 올라왔다.
당황한 나는 아무 생각도 없이, 엉겁결에 손을 휘둘러 그걸 쳐냈다. 검은 공은 다시 계단에 떨어지더니 아래로 두어 칸 굴러 내려가는...
“엎드리세요!!”
“으아...!”
멍청하게 서 있던 나를 버지니아가 밀어서 넘어뜨린 다음 덮쳤다.
-펑-!!
“크아아아...!!”
그리고 곧 아래층에서 폭음과 함께 남자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수류탄!”
창문을 지키고 있던 페기가 달려와, 자신의 수류탄을 하나 꺼내서 계단 쪽으로 던지며 외쳤다. 아래층에서 뭔가 급하게 우당탕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또 폭음과 진동이 울려 퍼졌다.
“괜찮으십니까, 소대장님?”
내가 다칠까 걱정했는지, 날 바닥에 내리누르고 있던 버지니아가 몸을 슬쩍 일으키고선 물었다. ...안경에 금이 가 있었다.
“...버지니아. 나 지금 ‘여기’ 있는 것 맞죠?”
“네?”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하긴, 나도 내가 왜 이런 걸 묻는지 모르겠는데 다른 사람은 오죽할까. 급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 나 괜찮아요.”
“...괜찮으시면 어서 일어나주십시오. 적이 아직 근처에 있습니다.”
버지니아는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지만, 이렇게 누워 있을 때도 아니라 생각해서 그런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탕-! 탕-!
버지니아가 일어나자마자, 페기가 창문 밖을 향해 총을 쏘고선 잽싸게 몸을 숨기는 모습이 보였다. 그래, 그래, 젠장.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기억하고 있잖아. 전투 중인데 도대체 왜 이렇게 정신이 딴 데 있다가 온 것 같은 기분이 드는지 모르겠지만, 정신 차리지 않으면 우리 세 사람이 다 위험하다. 어떻게든 이 주변에 깔린 아타만 병사들의 공격에서 살아남아 아군과 합류해야 한다. 세상에서 떨어져 있는 것 같은 이 이상한 기분은 빨리 잊자.

그렇게 생각하며 나도 일어났다.


“...후우우우.”
“괜찮으세요?”
버지니아와 함께 지키던 계단에 걸터앉아 한숨을 쉬고 있자니, 페기가 어깨를 두드리며 물었다.
“응. 정말 잘 싸웠어, 페기...”
“과찬이세요.”
상황은 내 비장한 결심을 빛바래게 했다. 몇 명인지 정확하게 모를 아타만 병사들이 이 골목에서 역습을 가해오는 동안, 나는 2층으로 날아든 수류탄을 한 번 쳐낸 것 외에는 별로 한 일이 없었다. 오히려 버지니아와 페기, 두 사람이 날 지켜줬다고 해야 하는 것이 정확한 말인 듯싶었다.
돌격소총을 들고 창 밖에 보이는 적들을 하나하나 침착하게 쏘던 페기, 그리고 기관단총을 들고선 계단을 막아서고 있던 버지니아 때문에 아타만 병사들은 이 건물을 감히 공격해오지 못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잠깐 밀려났던 우리 편 산악엽병들이 전열을 가다듬고 다시 이 골목을 제압하러 돌아왔다.
이번에는 어디 있다가 왔는지, 3식 돌격포가 함께였다.
낯익은 사각형 전투실의 3식 돌격포가 모습을 드러내면서 적들이 다시 도망갈 때까지, 나는 버지니아와 페기의 사이를 오가며 주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살피려고 필사적으로 눈을 돌렸을 뿐이었다.
버지니아가 안전하다며, 나오라고 손짓하는 것을 본 나는 힘이 빠진 다리를 억지로 움직여 건물 밖으로 나섰다. 앞쪽을 보니 산악엽병들이 전방을 향해 기관총을 거치한 다음 쏴대고 있었고, 뒤쪽을 보니 우리 차가 건물 옆에 멀뚱히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우리 앞에 선 3식 돌격포에서는... 어쩐지 그럴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었지만, 아니나 다를까 아는 얼굴이 쏙 튀어나왔다.
“아, 아인 소위님?”
“...메르세데스?”
내가 그렇게나 반가운 건지, 메르세데스는 자그마한 몸을 돌격포 위로 내밀고 손을 흔들었다. 방금 전까지 수류탄과 총탄이 오가는 곳에 있다가 덩치도 작은 여자아이가 그러는 것을 보니, 뭔가 마음이 부드러워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또 만나네요! 개전 첫 날 이래인가요?”
메르세데스의 뒤를 이어 몸을 내민 돌격포 차장도 손을 흔들었다.
“아...확실히...”
“벨이라고 불러주세요.”
“에헤헤...”
“얘는 자기 차장한테도 안 이러는 애가 왜 이런데! 그만 가자!!”
“아, 벨 중사니이임...”
내 팔짱을 끼고 포상휴가 노래를 부르던 그녀의 천진난만한 얼굴을 보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메르세데스는 반가워서 뭔가 더 말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는데, 산악엽병 지휘관이 벨에게 손을 흔들자 벨은 내게 슬쩍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메르세데스의 머리를 내리눌러 전투실 안으로 집어넣어 버렸다.(...)
“그럼 기회가 되면 또 보도록 하죠!!”
“네!”
-쿠르르르...
벨 중사와 메르세데스가 탄 3식 돌격포는 그렇게 앞쪽으로 가버렸다. 산악엽병들이 길 양 옆, 그리고 돌격포 뒤쪽으로 바싹 붙어선 그 뒤를 따랐다.

그래. 그것이 마씨니 시가전의 마지막 국면에서 우리 소대가 겪은 일이었다.

뭔가 허무하다고? 허전하다고?

뭐 어쩌겠는가. 2소대는, 21호차는 거대한 전쟁 속의 자그마한 조각배일 뿐인데. 식탁 앞에 앉았더니 남은 음식이 반 그릇 뿐인 것처럼, 급히 차려 입고 축제에 나갔더니 즐긴 지 1시간 만에 축제를 접는 것처럼, 두근대는 가슴을 안고 누군가를 만나러 나갔더니 일 이야기인 것처럼, ‘탄환과 장창’의 시대에, 언제 적을 보나 하면서 계속 걷다가 총은 딱 세 번 쏘고 의미도 모르고 뛰기만 하고 나니 전쟁이 끝나 있더라는 것처럼... 그런 흔한 일일 뿐이었다.

-퉁-
“끝까지 잘 버티나 했는데.”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며, 나름 정든 21호차를 주먹으로 살짝 쳤다. 수리할 수 있는 정도의 손상인 걸까?
“구동계는 조금만 점검하면 될 것 같고, 무전기가 수리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다행히도, 차 안에 들어가서 이곳저곳을 살펴보던 버지니아가 나와선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우리 군장에는 파편이 박혀서 엉망이군요. 갈아입을 옷이 상하지 않았다면 좋겠는데...”
“부소대장님! 화기는 아무 문제도 없어요!! 제 의자 뒤에 파편이 두 개 박힌 게 포수석 쪽 피해 전부인데요?”
포탑에서 화기를 살피던 페기가 차에서 내리며 웃었다. 그러고 보니 수류탄이 안에서 터진 시점에 우린 어떻게 살아 있는 걸까?
“아무래도 급조한 수류탄 같습니다. 나무 막대기에 약간의 폭약, 그것도 흑색화약이 얼마간 든 주머니를 철사로 감아 놓았던 것 같은데, 재수 좋게 양도 적었던 데다가 그게 붙은 쪽이 바닥이나 사람이 없는 쪽을 향한 게 아닌가 싶군요.”
하긴, 장갑차 실내에서 터졌는데 소리도 그렇게 크지 않았었지. 어쩌다 인근에서 산악엽병들의 수류탄 투척 훈련이 있을 때면 꽤 멀리서도 소리가 크게 들렸는데. 게다가 흑색 화약이라니. 어디 다른 데 쓰던 걸 급하게 수류탄 대용으로 만든 건가? 해군 기지고 하니 육군에서 보기 힘든 물건이 있어도 이상할 건 없겠다 싶지만.
“그렇다 쳐도 알츠 레미안은 멀쩡하게 내렸는데요?”
페기가 고개를 갸웃하며 묻자, 버지니아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알츠 레미안이야 전술마법사니까, 분위기가 이상하다 싶을 때쯤 방탄결계 마법이라도 준비했겠지.”
“아...”
그랬었지. 매일 익숙하게 보면서도, 정작 이런 상황에선 레미안이 마법사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버지니아의 말에 나와 페기는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좁은 공간에서 터졌음에도 무전기, 구동계 일부, 군장, 바닥, 레미안의 방탄 결계 등 이것저것 가로막은 것이 많았던 거로군.
“...우리가 운이 좋은 건지 코니가 운이 나쁜 건지...”
“글쎄요.”
버지니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내게 수통을 건넸다. 희한하게, 아무렇지도 않은 기분이었는데 물병을 보니 갑자기 목이 타는 것이 느껴졌다. 수통을 받아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다시 페기에게 건네니, 페기도 나와 비슷한 상태였는지 몇 모금인가 물을 마셨다.

참, 그러고 보니.
“...안경에 금 갔어요, 버지니아.”
버지니아는 자신의 안경에 금이 간 걸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는지, 잠깐 표정이 굳었다.
“...그렇군요. 전혀 모르고 있었네요.”
그러고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잘 안 보이니까, 소대장님 손을 잡고 돌아가면 되겠군요.”

.......오래간만에, 버지니아의 웃음을 보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3월 18일 오후 2시. 철갑상어낚시작전은 완료됐다. 코니가 다치고, 23호차를 잃고, 21호차가 약간의 고장이 났지만, 수색대대 2중대 2소대는 이번 작전의 끝까지 아무도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게 무엇보다도 기뻤다.

물론, 내게는 여전히 남은 일이 있었다. 아인을 찾아 이 모든 걸 원래대로 돌려놔야 한다는 것은 변하지 않았고, 마리아, 오렌과 한 약속도 지켜야 한다.
앞으로 다가올 만남 - 미테란트 외무성의 외교관이라든지, 가슴 큰 외교관이라든지, 베어티게르(Weretiger) 외교관이라든지 - 에 대한 걱정도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건 또 다른 이야기니까.

지금은, 잠깐이라도 좋으니, 순수하게 기뻐해도 되지 않을까? 이 멋진 전우들의 옆에서, 승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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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편 내용 중, 대 아타만 전역, 즉 철갑상어낚시작전까지의 분량이 끝났습니다.

다음 분량에 대한 구상은 거의 되어 있고, 초입부도 조금은 써 뒀습니다만, 일신상의 이유로 당분간 연재는 없을 것 같습니다.

졸필에, 연재처 자체가 유동인구가 적은 곳이라 연재가 한 번 끊기면 봐 주시는 분들이 확 줄어드니(...), 취미로 쓴다고 해도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닙니다만, 먹고 살아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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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블로그에의 포스팅도 거의 없을 예정입니다. 다만 혹시라도 댓글을 달아주시면 답은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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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데와 블로그에서 각각 좋은 말씀이나 격려, 오타나 오류 지적을 해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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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Seattle 2015/10/26 11:37 # 삭제 답글

    1. 한동안 연중이군요. 뭐 개인 생활이 있으실테니...
    2. 다시 나타난 저 아레일 하울러라는 여자 때문에 들키는 건 아니겠죠 설마(...)
    3. 아인은 전쟁터에서도 칼 행방 물으며 싸돌아다니던데 저때까지 살아있기는 한 건가요.
    4. 22호차는 생존왕! 그리고 칼 소대원 중 몇명 죽을 줄 알았는데 다 살았나보네요.
    5. 니케와 쌍벽을 이루는 이 작품의 안습녀 메르세데스 재등장이군요.
  • Artz알츠Mari마리 2015/10/26 23:00 #

    1. 네. 기간이 좀 될 터이니 한참 있다가 문득 생각나면 찾아보시는 정도로.(...)

    2. 아레일은...음. 칼이 들키게 만들 필요가 없는 사람입니다.

    3. 살아 있습니다.

    4. 23호차가 쓰러질 때 몇 명 다친 게 가장 큰 피해였습니다. 라이넬의 소대에서는 차 한 대가 통째로 전멸했고... 수색대대 자체가 71톤 전차랑 마주쳤을 때 외에는 대체로 만만하거나 약해진 적만 상대하는 추격 임무 위주로 싸운지라 그때 이외에는 별 피해가 없습니다.

    5. 메르세데스는 학교 다닐 때부터 성실한 사람인데도 소소하게 손해보고 사는 타입입니다.
  • 마아가림 2015/11/02 02:37 # 답글

    음;; 칼은 일단 일반인(미테란트에 산다는 것과 여장하고 여자 군대에 숨어있다는 점을 빼면)인줄 알았는데
    주인공 답게 범상찮은 부분이 있었던 모양이죠?
  • Artz알츠Mari마리 2015/11/02 08:31 #

    범상찮은 사람과 접점이 있다는 점에서 범상찮습니다.(?)
  • 마아가림 2015/11/02 02:38 # 답글

    그보다도, 이제 수시 면접도 다봤으니 정시 공부만 하면 2주 뒤에는 공부끝이네요
  • Artz알츠Mari마리 2015/11/02 08:32 #

    결과가 좋기를 바랍니다. 뭐든 한 큐에 끝내는 게 좋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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