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누나를 사랑한다 (95) ㄴ소년은 누나를 사랑한다

외무성 사람들은 그래도 좀 고급차를 타고 다닐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건 국내, 그리고 정식 외교 관계가 있고 대사관이 자리를 잡은 나라에 한해서. 거기다가 이 나라는 바로 직전까지 전쟁 중이었잖아요? 당신을 찾으러 움직인 건 나 하나뿐이고. 그러니 지금 여기서는 이럴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군용 4륜 구동차 같은 것을 타고 움직이고 계셨을 줄은 몰랐어요.”
이 차는 육군에서 급하게 빌린 것으로, 페인트칠을 새로 하고, 앞부분에 자그마한 미테란트 국기를 달아둔 정도에 불과했다. 천으로 된 지붕을 씌운 것 외에는 내가 속한 대대나 중대에서 볼 수 있는 것과 차이점이 거의 없었다.
“거기다가 운전까지 직접 하실 줄은.”
“뭐, 지금은 필비 양이 대신 해주게 됐잖아요?”
“제 일인걸요. 참, 그냥 엘레노아라고 불러주세요.”
“그럴까요? 그럼 저도 그냥 루크레티아라고 불러주세요.”
예정에 없던 동행도 하나 생겼다. 일리야 중령은 운전도 못하는 나를 일반 차량으로 경호 대상과 단 둘만 보내는 건 어불성설이라며, 자신의 운전병인 엘레노아 필비 일병을 붙여주었다. 그녀는 트럭보다 먼저 지나가라고 하는 야전 헌병에게 예의바르게 고개를 숙인 다음, 다시 가속페달을 밟았다.
“뭐, 여기까지 운전을 스스로 해올 수밖에 없었던 건 제가 선발대기 때문이에요. 저 말고는 두 사람이 같이 왔는데, 둘 다 지금은 브루노에 있는 호텔에 머무르고 있는 중이죠.”
너무 빠듯한 인원으로 움직이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엘레노아가 물었다.
“그럼 지금은 브루노로 가시는 건가요?”
“아뇨. 제노바로 갈 거예요. 요 앞에서 오른쪽 길로 가야해요.”
제노바라고?
“하지만 줄리오 펠리스 중위는 중앙 정부 조직 소속이고, 전역이 끝난 이상 주둔지에 간 게...”
앞에서 트럭 대열이 지나가는 것을 본 엘레노아가 브레이크를 밟아 차를 세웠다. 루크레티아 양의 말이 잠깐 끊겼다가 다시 이어졌다.
“여기 오기 전에 그 부분을 확인했어요. 현재 그가 속한 기마 순찰대는 아틀리아 자치령, 아니, 이제는 구 아틀리아 자치령이라 해야 하려나요? 현재 대다수가 거기에 파견되어서 평정 임무, 그리고 치안 업무를 맡고 있는 중이에요. 그런데...”
-부르릉-!!
다시 엘레노아가 가속페달을 밟는다.
“그 줄리오 중위는 제노바로 장기 휴가를 간 상태더군요.”
중대장 급 장교가 이런 시국에 단기도 아니고, 장기 휴가로 자리를 비운다고? 아니 물론 조직마다 인사 정책이야 다르겠지만, 그래도...
“조금 이상해서 수소문해봤는데, 어찌어찌 두 가지 사실을 알아냈어요. 첫째는 그 휴가가 줄리오 중위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다는 거고, 둘째는, 그 휴가를 강권한 곳이 아틀리아 자유국 내무부, 그러니까 계통상 아틀리아 국경경비대보다 상급 조직이라는 점이었죠.”
“장기 휴가를 강권했다고요?”
그것 참 부러운 일이네. 나에게 장기 휴가만 주어진다면 이 사태를 종결지을 수 있는데...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다시 줄리오 중위 이야기로 돌아와서, 일개 하급 장교의 휴가에 무엇 때문에 위에서 압력씩이나 넣는다는 말인가?
“그래서 그는 제노바에 있는 본가로 갔고, 제 생각이 맞는다면 아마도 거기서 매우 피곤하게 지내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요. 그도 그럴 것이, 제1 해안파에서는 그를 정치판으로 끌고 가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고, 그것과 별개로 또 그에게 ‘아틀리아 연방군’ 내지 ‘아틀리아 국방군’의 초안을 짜는 데 중심 역할을 해달라고 요청 중이라더군요. 그게 제가 그 사람을 만나봐야 할 이유고, 당신이 여기 있는 이유기도 해요.”
“하지만 그 사람 계급이...?”
일개 중위가 군의 초안을?
“잊지 마세요. 아틀리아 국경경비대는 미테란트 국방군처럼 잘 짜인 조직이 아니에요. 분권화된 지방 권력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어서 장교들이 밟아온 길조차 일정치가 않아요. 그러니 줄리오 중위의 계급만으로 그의 식견을 단정할 수는 없어요. 적어도 아틀리아 내 최대 정파에서 매달릴 만큼의 식견이나 실력, 하다못해 명망이 있는 사람이라고 보고 접근하는 게 나을 거예요. 아니면 그 사람을 중심으로 뭔가 전문가적 식견을 가진 인맥이 형성되어 있을 가능성도 있고요. 무엇보다도 이 나라에선 그 사람의 집안을 따지니까, 우리 기준으로 생각해선 이해할 수 없어요.”
루크레티아 양은 살짝 웃으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가끔 있죠. 그런 잘난 사람이.”

제네바로 향하는 길. 그래도 익숙해졌던 소대원들과 달리, 비교적 낯선 사람, 그리고 완전히 낯선 사람과 함께 하는 길이라 그런지, 일 이야기가 끝나자 별로 할 말이 없었다. 섣불리 말을 꺼냈다가, 소대원들 사이에서 그럭저럭 넘어가게 된 점들이 이상하게 받아들여지거나 하면 곤란하니까. 하아. 이런 급격한 환경 변화는 곤란한데 말이지.
그렇게 말없이 달리기만 하는 시간이 얼마간 흐르고, 내가 어려워하는 기색을 알아차렸는지, 아니면 조금이라도 가까워지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는지, 루크레티아는 조금씩 자신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 주었다.

뒷좌석에 앉은 루크레티아 양과 나눈 잡담은 대강 이런 것이었다.

“...저 같은 사람이 자기 책임 하에 일을 맡아 돌아다닐 수 있는 건 아마 우리 정부 조직 중에선 외무성이 유일할 거예요.”
“아, 하하. 그러네요.”
루크레티아 양은 나보다 나이가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었는데, 군에서 잠깐 복무하다가 전역한 뒤, 지역사와 관련된 자료를 정리하는 도서관에서 일하는 것을 외무성에서 눈여겨보고 데려갔다는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군 복무를 마법 연구소 쪽에서 의무중위 과정을 밟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어떤 체질상의 문제가 있어 그 과정을 그만두고 육군 참모부에서 정보부의 행정업무, 그것도 북부 지역의 군비정보를 취급하는 업무에 투입되었다. 전역한 뒤 지역사 관련 자료를 정리하는 도서관에 들어가는 것은, 전역할 때 받은 추천서를 띠고 간 덕에 어렵지 않았다고 한다.
“그 시절이 가장 재미있었죠. 낡은 도서관 건물이긴 했지만, 책들이 잔뜩 있는 곳에서 카프(Kap, 케이프)를 걸치고 일하면서 재미있겠다 싶은 책들을 눈여겨 봐두곤 했죠. 그리곤 쉬는 날에는 그런 책들을 뒤적거리면서 시간을 보냈고.”
나와 키가 비슷한 그녀가 카프를 걸친 채 책들과 씨름하는 모습을 떠올리니 나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은빛 머리카락에 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았겠지.
“그러다가 외무성에서 지역 전문가를 모집할 때, 아는 사람이 권유를 해서 지원했죠.”
지역 전문가 모집이라. 하긴, 공화국같이 태어난 지 40년도 되지 않은데다가 그 사이 국경선도 몇 번이나 변한 나라에서, 연합왕국 같은 나라의 외무성처럼 계급을 중심으로 한 엄격한 체계를 택하는 건 아직 무리겠지. 군대야 본질적으로 계급 중심으로 돌아가는 곳이지만, 다른 곳도 반드시 그렇게 돌아가야 할 필요는 없기도 하고. 시간이 더 지나면 모르겠지만...
“물론 외무성 자체적으로 계급제의 도입 필요성은 느끼고 있어서, 등급제도 도입했고, 하부에서부터의 외교관 육성을 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주변의 소국들과 관계된 세세한 영역까진 그 체계가 자리를 잡지 못했죠. 여전히 서부연방과 라스니아 공화국, 연합왕국과 관련된 부서들이 가장 중요하니까요... 그래서 소홀하다 싶은 나머지 영역에 대해선, 학계나 군에서 인재를 폭넓게 구하는 인사정책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어요. 전 마침 그때 필요로 하던 자리에 잘 맞았던 거고요.”
“하지만 도서관도 재미있다고 하셨잖아요?”
“음... 물론 도서관도 나쁘진 않았지만, 좀 더 나이를 먹은 뒤에 다시 돌아와도 책들이 늘면 늘었지 어디 도망가거나 하진 않을 테니까요. 좀 더 여러 가지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고 하면 될까요?”
“경험이라...”
쉬는 날에도 일터에 틀어박혀 책을 읽었다는 것이나, 경험을 쌓고 싶었다는 것이나... 진취적이라고 해야 하나? 아까 그녀가 말한 ‘가끔 있는 잘난 사람’에는 그녀 자신도 포함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전에도 했던 생각인 것 같은데, 내 주변 여자애들은 왜 이리도 잘난 걸까?
나보다 나이도 그렇게 많지 않은 사람이, 무려 외무성에 들어가 정책과 관련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 너무도 빛나 보였다.
“아틀리아에는 이번에 세 번째인가 와 보는 거예요. 서부연방과 관계가 악화되기 전의 일이죠. 반년 정도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생활했었답니다. 제노바, 브루노, 마리노도 그때 가서 몇 주씩 머물렀고요.”
반년이라. 정식 외교관계도 없는 나라에서 외무성에 소속된 사람이 머물렀다는 이야기다.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그거, 그냥 여행이었나요?”
혹시나 싶어 물어보자, 루크레티아 양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태연하게 웃으며 말했다.
“지금 생각하면 ,같이 다니던 사람이 지도 전문가니 전직 군인이니 하는 사람들이었고, 입국할 때 목적은 관광이긴 했지만... 뭐 그런 거겠죠?”
역시 공화국 사람들 준비성은 철저하다. 어떤 경우에서든.
“물론 저는 아틀리아 반도 주민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체감 물가는 어떻고, 정치 성향은 어떻고 하는 그런 일상적인 일들에 더 관심이 있었고...아니, 어쩌면 그래서 저더러 같이 가라고 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요.”
그리고 아마 귀국해서는 아틀리아 자유국의 민심이나 경제, 문화와 관련된 보고서를 썼으리라. ‘우리 군이 아틀리아 자유국을 점령하면 어느 지역은 반항적일 것으로 보이고 어느 지역은 협조적일 것 같습니다’ 하는 결론을 내는 데 쓰일 수 있을.
아니, 명색이 지역 전문가니까 그 정도로 끝나지 않겠지? 예컨대, ‘어느 지역 경제는 농업이 중심이므로 점령 행정을 펼칠 때 농사와 관련된 물자의 안정된 공급, 그리고 물가의 안정적 관리를 위해 과잉 생산된 농산물은 점령 당국의 예산을 써서 구매하고, 부족한 품목은 본국에서 가져다 값싸게 팔아 안정시켜야 할 필요성이 있다.’ 뭐 그런 이야기도 있었을 수 있겠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여행을 다녔던 지도 전문가는 지도를 보강했을 거고, 전직 군인이란 사람은 30톤이니 40톤이니 하는 전차들이 지나다닐 수 있는 교량이니 길이니 하는 것들을 알아봤을 거고...
젠장. 자꾸 알데인의 우는 얼굴이 떠올라서 생각이 삐딱하게만 흐른다.
“......”
루크레티아 양은 내 얼굴을 흘깃 보고는, 무슨 의미인지 모를 웃음을 지으며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엘레노아도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다 싶었는지, 운전에만 집중했고.

물론 단 세 사람이서 차를 타고 길을 가는데 언제까지 침묵할 수만은 없었다. 더구나, 알데인의 우는 얼굴과 루크레티아 양이 직접 관련이 있는 건 아니었으니 내가 그녀에게 뭐라고 하는 것도 온당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치자면 나는 ‘선생님’을 만난 그 마을에서, 아틀리아 자유국 소년의 팔에 평생 동안 남아있을 장애를 남겼다. 루크레티아 양은 보고서를 썼을 뿐이지만, 나는 아예 직접적으로 그런 일을 일으킨 것이다. ...비록 적의 사격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생긴 일이긴 했지만.
뭐, 실제로 이야기를 주고받지 않으면 안 될 일들이 생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툭-!
“...어라라?”
조금 당황한 듯한 엘레노아의 목소리. 부대에서 출발한 지 두어 시간이나 되었을까? 하늘이 알게 모르게 끄물끄물해지더니, 이윽고 차창 앞에 물방울이 하나 둘씩 맺히기 시작했다.
“비가 오네요... 곤란한데.”
차를 타고 가는데 비가 무슨 문제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제대로 포장되지도 않은 산간 도로라 빗속에서 달리는 것은 그다지 권할만한 일은 아니었다. 엘레노아가 걱정할만하지.
“루크레티아 양, 이 근처에 휴게 시설 같은 건...?”
“으음. 아인 소위, 이번 전역 동안 그런 거 본 적 있어요?”
루크레티아 양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중간 중간 마을이 있을 뿐이었지. 그러고 보니 도로교통 관련 휴게 시설은 공화국처럼 자동차가 잘 발달한 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거란 점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그렇죠? 그래도 아예 없진 않은데... 여기서 제일 가까운 휴게 시설은 세 시간 거리에 있어요.”
세 시간이라.
“엘레노아, 위험할까?”
“모르는 길이고 하니까... 안전하다고는 못하겠네요.”
“그럼 어디 세우고 비가 그치길 기다리는 게 낫겠네.”
“세울까요?”
“응.”
-끼이익-
엘레노아는 차를 길 밖으로 빼낸 뒤, 시동을 꺼버렸다. 웅웅거리는 엔진소리가 사라진 뒤, 루크레티아 양은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해줬다.
“참고로, 아틀리아의 도로 옆 휴게시설들은 대부분 중요한 고갯길 정도에나 있고... 규모도 공화국에 비해 터무니없이 작아요. 그 중 몇 곳은 아직도 수레 끄는 말이나 먹일 만한 곳이라 차량용 연료조차 그때그때 구할 수가 없죠.”
아무래도 경험담 같다. 으음. 나로서는 이번 전역 기간 동안 우리 대대가 다닌 길 외에는 아틀리아 자유국의 지형을 알 리가 없으니, 그렇구나 하고 들을 수밖에.
“확실히, 그렇다면 비 그치고 움직이는 게 낫겠네요.”
차의 시동이 꺼지고 나니, 차를 두들기는 빗방울이 내는 소리만이 우리 주변을 채웠다.
“예정이 틀어지네요... 오늘 밤이 되기 전까지 달려 제노바에 도착해서 숙박한 뒤에, 날이 밝으면 당신을 통해 줄리오 중위를 만나볼 생각이었는데.”
차창 앞으로 흘러내리는 빗물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나는, 루크레티아 양에게 문득 생각난 의문점에 대해 물었다.
“그야 확실히 제가 이번 전역 기간 동안 줄리오 중위와 함께 활동하면서 면식이 있긴 하지만... 그 사람이 제가 왔다고 만나준다는 보장은 없지 않나요? 만약 문전박대라도 당하면 어쩌실 생각인 거죠?”
공화국의 외교관이라는 사람이 브루노에 엄연히 존재하는 아틀리아 자유국 외무성을 통해서가 아니라, 여권 하나만 달랑 들고 다니며 개별적으로 접촉해온다는 건, 줄리오 중위가 제대로 된 군인이라면 당연히 경계할 상황이다. 일단 필요하다고 해서 따라오긴 했지만, 나 하나 앞세우고 그의 집으로 들이닥친다는 것 자체가 괜찮은 생각인 건지는 솔직히 의문이었다.
“아틀리아 호빗들은 그렇게 배타적이지 않답니다.”
성의 없는 대답에 살짝 짜증이 난 나는 조금 뾰족하게 쏘아붙였다.
“아니, 공화국 사람들이 다른 나라에서 보기에 성적으로 문란하다고 해서 정말 아무하고나 뒹구는 건 아니잖아요.”
서로 좋아한다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을 가로막는 여러 금기가 다른 나라에 비해 약하게 작용할 뿐이지. ...그러니까 내 말은, 그렇게 ‘일반적인 국민성’에서 아틀리아 호빗들이 사람이 좋다는 거야 익히 알려져 있지만, 그거야 대체로 그렇다는 거지 실제로 아무 손님이나 덥석 받아들이느냐는 건데.
“좀 더 설명이 필요한가요?”
“이 일에 필요해서 데려오셨다면 그 정도 설명은 듣고 싶습니다.”
“흐음. 그렇다면야...”
말끝을 흐리던 루크레티아 양은, 갑자기 어딘지 모르게 즐거운 기색을 띠며 내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음...일단, 아틀리아 자유국에 대가(大家)들이 있다는 건 기억하시죠?”
“네.”
줄리오 중위가 그런 유력한 가문 사람이라는 것도 들었다.
“그 가문들은 기본적으로 짧게는 100여 년, 길게는 수백 년을 지역에 뿌리내리고 일대의 존경을 받는 사람들이에요. 그렇다면 그 존경은 무엇에 의해 유지될까요?”
당장 떠오르는 건 하나 뿐인데.
“...그야, 돈이죠.”
“반은 맞았어요.”
잠자코 듣고만 있던 엘레노아가 슬쩍 끼어들었다.
“어... 나머지 반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정답. 지역의 대가들은 축제 때 가장 많은 돈을 내고, 기근이 들면 창고를 열고, 가난한 집이 있으면 도와도 주죠. 그리고 중앙 정부 사람이 지방에 오면 대접하는 일도 맡고요.”
“외국인 손님은 말할 것도 없겠네요?”
“정답. 그 손님이 불한당이 아니라는 전제 하에, 대가들은 배포를 보여야만 해요. 그렇게 대가들이 아무나 선뜻 할 수 없는 일을 도맡음으로써 ‘존경’이 생겨나고, 지역의 ‘질서’도 유지되는 거죠.”
‘정답’은 말버릇 같은 건가. 마치 선생님 같군.
“줄리오 중위는 군인이기 이전에 그런 가문의 소속원이라는 거로군요.”
“어느 정도 설명이 되었나요?”
“나라를 지키는 군인의 정체성이 그런 식으로 정의되는 것이 그렇게 긍정적인 현상은 아닌 것 같은데...”
“좋은 점도, 나쁜 점도 있죠. 앞으로는 좋지 않을 거라는 점만은 분명하지 않을까요?”
뭐, 루크레티아 양의 말대로 이 나라 풍습 내지 인식이 그렇다면, 줄리오 중위의 집에 들어가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겠지. 루크레티아 양은 거기까지 설명한 뒤, 뒷좌석에 둔 가방을 가리키며 내게 물었다.
“점심이나 먹을래요?”
“...네.”
“어디 보자, 엘레노아? 혹시 몰라서 묻는데 먹을 것 가져왔죠?”
“네. 가방 안에 있는데...”
“제가 꺼내도 될까요?”
“복잡해서 찾기 힘드실 거예요. 이쪽으로 주세요.”
“죄송합니다만 제 가방도 좀...”
아직 해질녘이 되지도 않았지만, 비가 계속 내려서 주변은 어둑어둑했다. 차창 앞으로는 빗물이 계속 흘러내려서 앞에 뭐가 있는지도 잘 보이지 않았고, 따닥따닥 하는 빗소리는 그칠 기미가 없었다. 대대 주둔지는 어떻게 됐을까? 배수로를 파놓긴 했지만, 그래도 야외 생활을 하는 중에 비가 오는 건 썩 좋지 않은데.
그런 걱정을 하면서, 나는 두 사람과 함께 미리 챙겨온 점심을 차 안에서 먹기 시작했다. 그녀는 내게 오는 중에 어디 다른 데서 샀는지, 우리가 아틀리아 사람들에게 얻었던 것과 비슷하게 생긴 빵을 가지고 있었다. ...그...빵...누구에게 얻었더라? 아무튼, 꽤 맛있었는데. 나는 뭐, 전투식량이고.
“자, 마셔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점심을 먹고 있던 중, 루크레티아 양은 자신의 배낭에서 보온병을 꺼내더니, 뚜껑에 내용물을 따라서 내게 건넸다.
“아, 고맙습니다.”
수통에 든 물 말고 별도의 음료를 가지고 오지 않았던 나는 별 생각 없이 그녀가 주는 대로 받아 마셨다. 컵으로 쓸 수 있는 것은 그 보온병 뚜껑 하나뿐이었기 때문에, 나는 내용물을 빨리 비운 다음 다시 그녀에게 돌려주곤, 반쯤 먹은 빵을 다시 집어 들었다.
“음?”
루크레티아 양이 갑자기 뭔가 의아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 흘렸나 싶어 여기저기 훑어보았지만, 딱히 이상한 곳은 없는데?
“저, 뭐 이상한 거라도...?”
무슨 일인가 싶어 물으니, 루크레티아 양은 퍼뜩 정신을 차린 듯 급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 아뇨. 아무 것도 아니에요.”
“으음?”
만난 지 얼마 안 되긴 했지만, 당황하는 모습은 처음 보는데... 뭐,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니 계속 마주보고 있기도 뭐하고. 먹던 점심이나 마저 먹어야겠군.
“저기, 아인 소위?”
흘러내리는 빗물을 바라보며 묵묵히 빵을 씹고 있는데, 루크레티아 양이 갑자기 말을 걸어왔다.
“네?”
“이번 전역, 처음부터 끝까지 해온 거 맞죠?”
“네. 그런데요?”
루크레티아 양은 다시 차 한 잔을 따라 건네며 내게 부탁해왔다.
“비도 오고 시간도 많으니까, 그 이야기 좀 해주지 않을래요?”
확실히, 시간은 많지. 그런데 왜 갑자기 그걸 듣고 싶어진 걸까. 그녀의 얼굴을 살폈지만, 예의 그 포근하게 보이는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고 별다른 건 없어 보였다.
“그러죠.”

루크레티아 양은 자신이 말했듯 이미 군에서 근무했던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일반적인 루트로 군에 들어간 것이 아니었고, 그나마도 르제프에 있는 총참모부에서 사무를 보며 지내다가 군 생활을 끝냈기 때문에, 실제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나름대로 관심이 있는 모양이었다.
이야기는 의외로 깊게 들어갔는데, 루크레티아 양은 전역이 시작되기 전에 받은 훈련부터, 그 전에 받은 물자, 공격이 시작된 당일의 경과 같은 것들을 소상하게 물었고, 나는 기억나는 대로 답해 주었다.
루크레티아 양이 가장 관심을 기울인 이야기는 역시 아틀리아 자유국의 마을들을 들렀을 때 있었던 일, 그리고 아틀리아 기마 순찰대와 함께 움직인 일에 관한 것이었다. 이쪽은 아마 자신의 일과도 직접 관계되었기에 더 그런 것 같기도 한데.
중간에, 묘하게도 뭔가 시험받는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지만, 그녀가 나를 시험하는 걸로 얻을 이익이 있는가를 생각해보면 그럴 리는...없겠지?

피곤에 지친 엘레노아가 잠깐 눈을 붙인 사이, 이야기는 흘러서 가장 심각한 대목에 이르렀다.
“그렇군요. 당신은 그걸 직접 본 거로군요.”
“...네.”
“......”
테모르필 학살 사건에 대해 언급했을 때, 루크레티아 양의 표정이 처음으로 심각하게 변했다. 한참의 침묵 끝에, 그녀는 조용히 그날 있었던 일을 말해 주었다.
“르제프에는... 비공식적으로는 하루 만에 그 소식이 여기저기 전해졌었죠. 뭐, 사람이 많으면 조금 말이 많은 사람은 항상 있으니까요. 조사도 덜 끝난 상태에서, 알려진 사실은 ‘아틀리아 자유국에서 아타만 육군에 의한 대규모 민간인 학살이 벌어졌다’ 정도였지만. 난리도 아니었어요. 당직 근무자의 호출로, 퇴근했던 외무성 사람들이 한밤중에 우르르 다시 돌아와선 소식을 기다리며 앞으로의 대응 방침을 논의했죠. 당연하지만...으음!!”
좁은 차 안에 오래 머무르는 것이 갑갑한지, 루크레티아 양은 양 팔을 들어 올리며 기지개를 켰다. 잠깐 시선을 둘 곳이 없어진 나는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음. 마리아와 동급이거나 그 이상인 것 같은데.(?)
“후우...그날 밤에는 결론이 난 게 없었어요.”
“그, 그랬겠죠.”
그날 밤이라고 하니, 여러 가지 광경이 떠올랐다. 알데인의 우는 얼굴이나, 중대원들의 참담한 표정, 그래도 자기들이 잘못한 건 아는지 후회하는 기색이 역력하던 아타만 포로들, 환한 조명 아래서 분주하게 기록하며 움직이던 테레사 소위, 타티아나 하사... 그리고 내 심장 소리를 한동안 듣고 있던 레미안까지.
“날이 밝고 육군에서 정보가 넘어온 다음에야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 방침이 섰어요. 우선 아틀리아 외무성과 접촉해서 공동 명의로 아타만 군의 전쟁 범죄를 규탄하는 성명을 내고, 그 다음은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거였죠. 결과는 말하지 않아도 알겠죠? 네. 각국 언론들이 대서특필을 하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아타만 제국 본국은 당황했는지 날조다, 사태를 파악하고 있다, 이건 다 육군 탓이다... 그렇게 외무성 성명 외에 육군성, 해군성 성명이 더 나와서 짧은 시간 안에 한 나라 안에서 무려 세 가지 성명이 나왔죠.”
“맙소사.”
공무원이 아닌 나도 그게 무슨 상황인지 알 것 같다. 사건 자체부터 그에 대한 설명까지, 모조리 망신의 극치 아닌가. 설마, 서로 무슨 말을 하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건가?
“그게 도대체 어떻게 된 사태인지는 파악하진 못하고 있어요. 하지만, 중요한 건 이미 일어난 ‘사실’이니까요. 그 뒤로는 군에서도 상황 전파로 들었죠?”
“네. 신속하게 전개된 재판과 그 결과, 그리고 그에 대한 각국의 반응까지 소식은 전해졌어요.”
학살을 자행한 아타만 산악사단-제21 산악사단이라고-의 사단장의 재판에서 나왔다는 말은 너무나 어이가 없어서, 일리야 중령이 말한 ‘부하들이 자신을 걸 만한’ 것이 전혀 아니었다.
“부대가 무너질 것을 염려해서 한 지시라니, 정말 말 같지도 않은 이유죠, 참...”
죄수들로 이루어진 부대라, 불리한 상황에 뿔뿔이 흩어질 것을 우려한 그 사단장은, 대책이랍시고 기상천외한 발상을 해냈다. 작전에 방해되는 아틀리아 민간인들을 학살하도록 한 뒤, 공범 의식으로 부하들을 이탈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
부하들이 ‘이왕 인간성을 버린 것, 이제 남은 것은 미테란트 군과의 싸움뿐이니 끝까지 이 길로 가는 수밖에 없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그가 기대한 효과였다는 이야기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땐, 그 사단장이란 남자가 잠도 못 자고 아틀리아 자유국의 산지를 건너 우리 군단의 좌익을 강타하고, 결국 패배한 뒤 또 잠도 못 자고 아틀리아 자유국 영내로 한참을 도망가며, 비몽사몽간에 이상한 판단을 내린 거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었다.
“......”
그래, 그따위 이유로 400명이 넘는 민간인들이, 그것도 중립국의 민간인들이 머리에 총알 한 발씩을 맞고 운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그게 이유가 되는 것일까? 중요한 전투라 민간인 피해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든지, 아니, 전투 중에 뒤통수를 맞을 가능성을 없앤다든지 하는 어이없는 변명이라도 댔다면 차라리 모르겠다.
그건 그나마...다시 강조한다. 그나마다. 전쟁의 역사에서는 처음 일어난 일은 아닌 비극이다. 그러니 그런 건 3류 군대나 할 짓이라며 욕을 해 줄 수 있다.
그런데, 그런 것도 아니고 죄의식을 통한 부대의 결속이 목적이라니. 그건 군대가 아니라 마치 범죄 조직이나 할 일 아닌가. 죄 없는 사람을 데려다 놓고 조직 새내기의 담력을 기르고 조직의 결속을 다진다며 찔러 죽이게 만드는 식의, 그런 짓거리와 다를 게 무엇이란 말인가?
그런 것이 민간인들을 죽인 이유라면 그건 이미 3류 군대조차도 아니다. 죄수로 구성된 부하들을 다루다 보니, 사단장도 범죄자의 방식에 물들기라도 한 건지도 모르겠다. 죄수들로 이뤄진 구식 사단을, 우리 공화국 군조차 움찔하게 만들 정도로 강하게 키워낸 훌륭한 사단장이었다고 하는데, 알고 보니 훌륭한 사단장이 아니라 훌륭한 ‘두목’이었던 모양이다. 어지간한 사단장들은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그런 방법과 같은 건 아예 처음부터 떠올리지 않았을 텐데.
‘군인은 서로에게 불합리한 희생을 요구해서는 안 되고, 거기 부응하려고 애써서도 안 돼요. 그러면 어디선가 사고가 나게 마련이죠.’
갑자기 네리아 중위의 말이 떠올랐다.
“그 말 같지도 않은 이유 탓에, 이 목가적인 나라도 무거운 엉덩이를 들지 않을 수 없게 됐죠. 참 얄궂은 일이에요.”
“......”
피눈물을 흘리면서 말이지.
“그러고 보니, 하나 물어봐도 될까요?”
마지막 남은 빵 한 조각을 막 먹으려던 루크레티아는 손을 멈췄다.
“뭔가요?”
한 번 심호흡을 하고 물었다.
“아틀리아 자유국 사람들이 우호적인 중립을 택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그 다음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대답은 의외로 빠르게 돌아왔다.
“공식 입장 같은 게 아니라 제 생각일 뿐이라는 걸 전제하고 답하자면, 중립이기만 하면 아무래도 상관은 없지 않을까요? 물론, 우리 영향력 아래에서 우호적으로 중립을 유지하겠다고 하면 일어서는 것을 도와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들이 연합왕국이나 서부연방 공화국과의 동맹을 택해서 안보를 확립하겠다고 택하면 그때부터는... 우리 입장에서는 늑대를 쫓아내니 곰이나 사자가 그 자리로 들어오는 격이나 다름이 아니니까.”
“또 올 일이 생길 수도 있겠군요.”
“그거야 모를 일이지만요.”
“하아...”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될 수도 있다는 거로군.
“그럴 일이 없게 하기 위해선, 몇 시간 전에도 말했지만, ‘제1 해안파’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알아두는 것도 중요한 일이겠죠?”
“네.”
...엘레노아가 잠깐 눈을 붙인 사이, 루크레티아 양과의 여행은 그렇게 데면데면하게 일에 관한 대화로 채워졌다.

구 아틀리아 자치령 지역에서 아틀리아 자유국으로 이동하는 사이의 도로는 오랫동안 정비가 되지 않은 탓에 비까지 내려 상태가 영 좋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 더 달리자 자유국 내 도시들을 연결하는 도로를 탈 수 있었는데, 그 도로들은 한결 상태가 나았다.
그러나 출발한 당일로 제노바에 도착하겠다던 계획은 어그러지고 말아서, 비가 그친 뒤 고갯길에 있는 쉼터에 도달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루크레티아 양이 먼저 내려서 문을 두드리고, 나와 엘레노아는 그 사이 차에 앉아 주변을 살펴보았다. 쉼터는 그리 크지 않은 소박한 건물이었는데, 건물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오래된 마구간이 보였다.
“꽤 오래된 시설 같은데요? 기름이 있을지...”
“전기도 안 들어올 것 같은데.”
“...그래도 씻을 수는 있겠죠?”
“그 정도도 안 될까봐?”
으음. 사단 전체가 야지 생활을 며칠씩 계속했으니, 엘레노아도 무척 씻고 싶을 것이다.
“방이 있다고 하네요.”
“다행이네요. 두 개인가요?”
“음? 하나만 잡았는데요? 예정에 없던 지출이라서 돈을 아껴 쓰려고요.”
...안 다행이네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차에서 필요한 짐을 내렸다. 자그마한 호빗 할머니 한 분이 나와서 어서들 오라는 듯 손을 흔들고 계셨다.
“실례하겠습니...다.”
인사를 하고 루크레티아 양의 뒤를 따라 쉼터에 들어서서, 엘레노아와 함께 주변을 살폈다. 전깃불도 없이 여러 개의 촛불만 실내를 밝히고 있었다. 그 희미한 불빛이 비친 곳에 테모르필의 집에서 봤던 것들과 어딘가 닮아 보이는 가구나 뭐 그런 것들이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척 봐도 오래되어 보이는데, 루크레티아 양이 말한 대로라면 아마도 이 쉼터는 자동차가 발명되기 이전부터 이 자리에 있었을 것이다. 높은 고개를 오가며 지친 몸을 쉬는, 뭐 그런 자리였겠지.
“...에구, 에구...어디 봄세...미드랜드(Midland) 처자들이오? 어서 들어와 불부터 쬐구려. 비가 와서 날이 춥소.”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자니, 호빗 할머니가 벽난로에 불을 지피고는 좀 옛날 티가 나는 미테란트 말투로 말을 걸어오셨다.
“미테란트 말을 할 줄 아시네요?”
“옛날에는 맞닿아 있었으니까, 서책도 보고, 또 귀동냥으로도 배워뒀소. 저 화적떼 같은 아타만 놈들이 길까지 막아버리기 전에는 호박(琥珀)도곤 고운 미드랜드 처자들이 내왕할 때도 종종히 있었소.”
“그럼 기꺼이.”
루크레티아 양은 웃으면서 호빗 할머니가 내준 의자에 앉아 불을 쬐기 시작했다.
“전에 여기 온 적 있으신가요?”
“아뇨. 차를 타고 지나는 길이었으니까. 이번이 처음이라고 보는 게 좋겠네요.”
벽난로의 불이 기세를 얻어, 실내에 훈기가 돌기 시작했다. 곧, 할머니께서 따뜻한 김이 올라오는 잔을 두 개 가지고 오셨다.
“감사합니다.”
“잘 마시겠습니다.”
...라고 해야 할까, 이거 그냥 따뜻한 물에 설탕 푼 거잖아? 황당하다는 표정의 엘레노아와 마주보다가, 루크레티아 양과 눈을 마주치니, 그녀는 어깨를 그냥 으쓱하며 자신의 잔에 든 것을 마시고 있었다. 으음. 이럴 때는 전문가를 따라야겠지.
“오래 살아 놓으니 미드랜드 말도 다시 쓸 일이 있네그려. 다 잊을 뻔했소.”
“아직 잘 하시는데요, 뭘.”
좀 옛날 말투긴 하지만.
“그런데 이를 어찌하나? 남쪽에서 난 싸옴 때문에 먹을거리가 얼마간 그츠었소. 모레면 제노바서 가지고 오겠지만, 지금은 맥병에 사탕분만 있소.”
“제노바는 여기서 북쪽인데...”
“그 사람들이 간장이 콩알도곤 작소. 값을 더 쳐달라기에 그렇겐 못 하겠소 했더니 그럼 이번 달 거래는 텄다기에 이역부득이었다오. 하긴 손도 없었지만...”
“그거라도 괜찮습니다.”
“그러하면 좋소. 곧 내오리다. 아, 그려도 땔거리는 하오. 씻으려면 씻으시오.”
참 별난 말투다. 오래된 말과 지금 쓰는 말이 섞여 있긴 하지만 못 알아들을 정도는 아니었다.
“저 할머니께서 무슨 책으로 공부하셨는지가 궁금하네요. 할머니께서 어리실 적보다 훨씬 전에 쓰이던 말이 섞여 있어요.”
“훨씬 전이라고 하시면?”
“공화국의 성비가 지금같이 되기 전의 말투가 조금이지만 섞인 것 같은데요?”
맙소사.

할머니가 말한 대로 식사는 맛이 없었다. 아마도 아틀리아 영내로 들어선 뒤 맛본 민간 음식 중에선 가장 맛이 없는 축이었다. 비까지 온 통에 눅눅해져서 더 심한 것도 있었지만.
-쏴아아아아-!
조금 시무룩해진 표정의 엘레노아와 함께, 그렇게 그저 그런 맛의 보리빵을 먹고 있자니 한동안 그쳤던 비가 다시 내리는지 빗소리가 울렸다.
“또 비가 오나 보네요.”
목조 건축물이라 그런지, 빗방울 소리가 건물 내에 타악기 소리마냥 울렸다. 그 사이 할머니는 익숙한 동작으로 대야 몇 개를 들고 나와, 두세 군데 정도 바닥에 흩어놓으셨다.
-똑-! 똑-!
그러기 무섭게 천장에서 물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부디 침실은 저렇지 않길 바라야겠군. 아, 참. 그러고 보니 루크레티아 양이 방을 하나만 잡았다고 했었지? 아무래도 몇 가지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되겠군. 일단 생각나는 것부터 던져 볼까.
“저녁 먹고 나서 말인데...”
“네?”
“비도 많이 오고, 혹시 모르니 아무래도 차에 방수포를 좀 쳐둬야 할 것 같아요.”
“제가 하면 돼요, 아인 소위님.”
“혼자서 비바람 맞으면서 하는 건 힘들 거야.”
겨우 비 좀 맞는다고 고장이야 나겠느냐만, 그래도 혹시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비병도 없고, 뒤를 받쳐주는 부대도 없는 상태에서 남의 나라 땅에 있는 건데, 차가 고장이라도 나면 난감해진다.
“그럼 저도 돕도록 하죠.”
“아뇨, 둘이서도 됩니다. 장갑차 정도 되면 모를까 저 정도라면... 그러니 그 사이에 먼저 씻으시면 될 것 같네요.”
“설마 제 신분을 고려해서 그런 생각을 하시는 건 아니겠죠?”
그야 루크레티아 양은 외교관이니 군인인 ‘아인’이 지켜줘야 한다. 하지만 내가 고려하는 요소는 그것보다는 다른 데에 있었다.
“아니, 빨랫감을 하나라도 만들지 않았으면 하는 고려에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만.”
“아, 그건 걱정 마세요. 제 빨래는 제가 하면...”
아차.
“그, 그러니까 제가 두 사람 몫의 빨래를 할까봐 걱정하는 게 아니라, 당신까지 젖는 게 싫은 겁니다!”
이런.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살짝 높아졌다.
“저도 두 사람만 젖게 만드는 게 불편한데요.”
하지만 루크레티아 양은 눈을 조금 동그랗게 뜰 뿐, 딱히 화를 내거나 하진 않고 웃으면서 그렇게 응수했다.

결국 우리 셋은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차에 방수포를 씌우기 위해 함께 밖으로 나왔다.
“아인 소위님, 넘기죠!”
“그쪽 귀퉁이!! 꽉 잡고 계세요!!”
“알겠어요.”
외교관용으로 쓰라고 칠을 다시 하긴 했지만, 그래도 원판이 군용이라 그런지 필수적인 부수기재들은 그대로 다 실려 있었다. 방수포를 꺼내 차에 씌우고, 네 귀퉁이를 묶어 바람에 날려가지 않게 해두고 나서 두 사람에게 들어가자고 손짓을 했다.
신발에 묻은 진흙을 털고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잠깐 나갔을 뿐인데, 목덜미가 축축하고 서늘한 게 꽤 젖었다 싶다. 루크레티아 양 쪽을 바라보니, 그녀 역시 많이 젖어 있었다.
“다 젖어버렸네요.”
“그러게 안에 계시라고 했잖습니까.”
“그럴 걸 그랬나요, 역시?”
“당연하죠.”
그녀를 떨어뜨려 두는 것과 별개로, 정말로 같이 젖을 필요는 없는 거였는데...
“아이고. 젖어서 어찌하오? 어셔 예서 말뢰소! 고뿔 드오!”
어느새 나타난 주인 할머니께서 호들갑스럽게 우리를 벽난로 쪽으로 끌어당기셨다. 그 때문에 나는 루크레티아 양에게 더 이상 뭐라고 말하지 못하고, 벽난로 앞에 가야만 했다.
“옷이 마르면 씻고, 그 다음에 자도록 하죠.”
“아, 루크레티아. 내일은 얼마나 더 가야 되나요?”
엘레노아가 문득 생각이 났는지 물으니, 루크레티아 양은 잠깐 생각을 하는 눈치였다.
“흐음... 도로에 문제가 없다면 좀 밟아서 서너 시간 정도?”
하아. 아직 데면데면한 사이인 사람들과 서너 시간이라. 그것도 참 피곤한 일일 건데.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뭔가 불편한 점이라도?”
윽.
“아뇨. 그... 소대원들이 걱정 되서 말이죠.”
루크레티아 양은 어딘지 모르게 과장되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선 물었다.
“소대원들이 믿음직하지 못한가요?”
“소대원들은 최고입니다.”
내게 과분할 정도다. 아니, 사실 과분하다. 나는 가짜니까...
“그냥 걱정된다는 거죠. 비도 오고 하니까.”
“흐음. 비도 오고 말이죠?”
“네, 그, 그렇죠. 비가 오면...”
순간적으로 말을 멈췄다.
“오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얼버무리고 다시 벽난로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루크레티아 양도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더 묻지 않고 나처럼 시선을 벽난로 쪽으로 향했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목욕을 하는 데 있어선 별 문제가 없었다. 루크레티아 양은 먼저 씻으라는 내 말에 선선히 그러마하고 갔고, 엘레노아도 강권하다시피 해서 나보다 먼저 보냈다. 그러고 나서 벽난로 앞에서 조는 척을 하다가, 엘레노아가 옷매무새를 다 정리하고 나온 뒤에서야 씻으러 갈 수 있었다. 혹시라도 둘 중 한 명이라도 같이 씻자는 소리를 할까봐 내심 걱정했는데, 역시 그럴 염려는 없었던 모양이었다.
-촤악-
천천히 씻으면서, 나는 좀처럼 실감하지 못하고 있던 사실 하나를 새삼 깨달았다. 아주 오래간만에, 내가 혼자라는 사실이었다.
“......”
몇 달 동안 아인을 연기하며 생활하는 중, 혼자였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방 안에서는 코니와 페기, 그리고 레미안이 함께 생활했고, 방문을 열고 나가면 버지니아와 앤을 비롯한 소대원들, 그리고 레오니와 라이넬의 소대가 있었다. 아침마다 중대장 네리아 중위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들어야 했고, 가깝고도 먼 사람인 대대장, 일리야 중령의 불만이 가득한 얼굴도 심심찮게 마주쳤다.
일정표는 빈 칸이 없었다. 낮에는 훈련이나 정비를, 밤에는 근무를 서야 했고, 명색이 장교라 휴식시간도 바쁠 때가 많았다.
그래, 사람이든 일이든, 매일이 모든 것이 가득 찬 생활이었다. 물론 어느 정도의 사생활 존중이 있기에 최소한의 영역까지 침해하거나 하진 않을 정도로 여유는 있었지만...
그러다가 모처럼 혼자. 사람으로 북적거리던 주변은 조용하고, 장갑차 정비니 훈련이니 하는 것도 당분간 신경 쓸 필요가 없다. 한편으로는 홀가분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뭔가 허전한 이상한 기분이었다. 나 이러고 있어도 되는 걸까?
물론, 일리야 중령이 말한 것처럼 이 일도 중요하겠지만, 솔직히 말해 그런 일에 내가 필요한가 하는 점은 여전히 의심스러웠다. 아니, 너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일이 튀는 바람에 혼란해진 건지도 모르겠다.
“휴우.”
며칠간 계속된 야전 생활 때문에 꼬질꼬질해진 군복을 다시 입었다. 씻은 보람이 없는 것 같아 영 찝찝한 기분이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또... 이젠 아인이 강요하지 않아도 여자 옷을 자연스럽게 입게 되는구나 싶었다.

“왔군요. 엘레노아는 먼저 들어가서 자는 중이에요. 와서 좀 말려요. 감기라도 걸리면 안 되니까.”
“네. 알겠습니다.”
옷을 입고 나서 벽난로가 있는 쪽으로 가니, 루크레티아 양이 흔들의자에 앉아 있었다. 아직 머리카락이 덜 마른 상태기도 했고, 무엇보다 추웠기 때문에, 나는 두말없이 다른 의자를 하나 가져다 놓고 앉았다.
“......”
-끼익- 끼익-
-타닥-! 탁-!
흔들의자가 천천히 앞뒤로 움직이는 소리와 땔감 타는 소리만이 어두운 실내에 울렸다.
“가족은 있나요?”
슬슬 졸린다 싶을 즈음, 루크레티아 양이 갑자기 그렇게 물었다.
“네?! 아, 네! 그...누, 나, 남동생이 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렇...군요. 으음...‘백색년생’인가요? 남동생이라면.”
“아뇨. 그 전에 태어났습니다. 이란성 쌍둥이거든요.”
“아! 그랬군요.”
참고로 ‘백색년생’이란, 조국해방전쟁에서 승리한 뒤, 엄중히 숨겨져 있던 성비조절결계 구성물들을 찾아내 부서뜨린 후에 태어난 아이들을 일컫는 데 쓰는 말이었다. 그 전에 태어난 나나 아인은 뭐라고 부르느냐고? 우리는 ‘붉은년생’이다. 가을에서 겨울이 될 때 일어나는 천문 상의 변화, 그리고 성비 조절 결계로 인해 태어나지도 못하고 죽어간 남자 아기들의 피. 그 두 가지를 빗대어 일컫는, 상당히 오래도록 쓰인 단어였다.
“남동생 분이 축복받고 태어나셨군요..”
딱히 저주받고 태어난 건 아니지만 축복이라고 할 것 까지 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이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조금 궁금해져 이번에는 내가 그녀에게 물었다.
“루크레티아 양은 가족이...?”
“어머니께서 살고 계세요. 북동부주에.”
“네...”
외동인 건가. 뭐, 가장 흔한 유형의 가정이니까.
“저는 혼자라서, 동기간이 있는 사람은 조금 부러울 때도 있어요. 어머니와는 터놓고 말을 하기 힘든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좋기만 한 건... 가끔 성가신 일도 생기곤 하니까요.”
가령, 지금 내 처지처럼.
“당연히, 그것까지 포함해서 부러워하는 거예요.”
“네?”
“애완동물도 아니고, 옆에서 부대끼는 사람이 하나 더 생기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면 그건 말이 안 되는 일이잖아요? 동기간이 있는 걸 부러워하는 사람은... 뭐라고 해야 할까, 그걸 알면서도 갖고 싶은 거예요.”
그런 문제라면 아무리 안 좋다고 해봤자 의견일치가 불가능하겠지. 나는 다만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말이 길어진 것 같네요. 슬슬 자러 가는 게 좋겠죠?”
루크레티아 양이 몸을 일으킬 기미를 보였다. 어떻게 하면 잠들기 전 시간을 그녀와 함께 깬 채로 있는 상황을 피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문득 내게 온 편지가 떠올랐다.
“먼저 들어가 주무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읽어야 할 편지가 한 통 있는 게 생각나서...”
루크레티아 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먼저 짐을 부려둔 방 안으로 향했다.

그리고, 때가 왔다.
“휴우...”
벽난로의 불은 아까보다 조금 약해져 있었지만, 편지를 읽기에는 별 불편함은 없었다. 동글동글한 글씨가 적힌 흰 봉투를 조심스럽게 열어젖혔다.
-꿀꺽-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어서 마른침을 삼키고, 곱게 접힌 편지를 살짝 펼쳤다. 동글동글한 글씨들이 눈에 들어왔다.

- 아인에게.

아틀리아 반도에서 잘 지내고 있어? 펠트키르히는 아무렇지도 않아. 물론 부대에 사람이 없으니 거리가 많이 한적해지긴 했지만. 그냥 평소보다 비행기들이 자주 지나다니는 정도야.
전쟁 소식은 라디오를 통해 매일 듣고 있어. 난 아주 조금이지만, 아마도 네가 짐작하고 있을 이유로 다른 사람들보다 빠르게 전쟁이 날 걸 알고 있었어. 하지만, 그걸 알고 있다는 사실과 별개로 엄마가 전쟁터에 나가게 된다는 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무서웠어.
세상이 평화로웠다면 얼마나 좋을까!
학교를 마치고 나와 문을 열면 집 안은 조용해. 나 말고도 집에 돌아올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이제야 실감하는 중이야. 아마 엄마도 같을 거라고 생각해. 엄마와 나는 서로가 세상에서 하나뿐인 가족이니까. 아인 덕분에 터놓고 이야기하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은 일이지만, 그래도.
물론, 너도 걱정하고 있어. 곧 펠트키르히로 돌아와서 지난번처럼 함께 저녁이라도 들었으면 좋겠어. 그때는 내가 한 음식으로 대접할 수 있도록 연습하는 중이야.
난 지난번처럼 우리가 식탁에 같이 앉을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어. 아인도 그랬으면 좋겠다.

그럼 이만 줄이도록 할게.

“...어, 이걸로 끝?”
다행히 평범한 이야기들뿐인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딱히 위험한 부분은 없는 것 같군. 그렇다면 내게, 아니, 아인에게 했던 기습적인 입맞춤은 도대체 뭔가 싶기도 하지만, 그거야 그냥 일리야 중령과의 관계에 다리가 되어 준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라고 보면 될 것 같기도 하고.
“휴우.”
음, 그래. 분명히 그럴 거야. 이걸로 걱정 하나는 덜어도 될 것 같다. 남자 차는 법 같은 것을 묻고 다닐 필요도 없겠군.
“슬슬 잘까...”
할머니도 뒷정리를 하고 주무셔야 할 거니까, 객이 언제까지 여기서 뭉개고 있을 수는 없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나디아의 편지를 봉투에 고이 집어넣고 방으로 향했다.
-끼익-
조용히 문을 열고 방 안에 들어섰더니, 이층 침대 두 개가 보였다. 왼쪽 아래에선 엘레노아가 약간 엉거주춤한 자세로 이불을 덮고 자고 있었고, 오른쪽 침대에는... 아이고.
“이제 들어왔군요.”
어둠 속에서 루크레티아 양이 손을 살짝 흔들었다. 잠을 자기 위해서인지 얇은 옷만 걸친 채로.
“어... 제가 깨웠나요?”
시선을 둘 곳이 없어 난감해하며 물으니,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막 자려던 참이었어요. 저쪽 2층에는 가방들을 뒀으니까, 아인 소위님은 제가 있는 쪽 2층에서 쉬시면 될 거예요.”
“그, 그렇군요.”
급하게 전투화를 벗고, 침대 옆에 붙은 사다리를 오르...
-퍽-
“...아야야...”
...다가 미끄러져 무릎을 부딪쳤다.
“괜찮으세요?”
아파서 주저앉아 무릎을 싸쥐고 있자니, 루크레티아 양의 걱정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네, 괘에에에...! 괘, 괜찮아요!”
고개를 든 순간, 루크레티아 양의 하얀 얼굴이 코앞에 있었다. 깜짝 놀란 나는 바보처럼 대답하고선 황급히 몸을 일으켜 사다리를 올라갔다.
“휴우...”
이유를 모를 안도의 한숨을 쉰 나는 권총집을 포함한 간략한 군장을 머리맡에 두고, 허리띠를 헐겁게 한 뒤 상의 단추를 몇 개 풀었다. 그게 잘 준비의 전부였다. 전쟁이 일어난 뒤로 가장 좋은 점은, 곧바로 상황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는 핑계로 옷을 조금도 벗지 않고 자도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물론, 계절이 초봄인 덕분이기도 했다. 만약 일리야 중령 말대로 전쟁이 계속 진행되고, 여름이 온다면 지금처럼은 힘들겠지?
뭐, 나중 문제는 나중에 걱장하자. 일단 루크레티아 양과 함께한 첫 날은 그럭저럭 잘 끝낼 수 있었던 것을 자축하는 게 좋겠지? 자두자.

덧글

  • Arsita 2016/07/23 13:42 # 답글

    칼과 아인의 거리(물리)는 점점 멀어지고만 있네요
  • Artz알츠Mari마리 2016/07/23 16:47 #

    지금 둘이 만나면 이야기 끝납니다.(...)
  • Arsita 2016/07/25 23:03 #

    그렇긴 하지만 아인은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근황이 궁금하네요...
    펠트키르히에 있을까요? 아니면 브루노에 있는지...
  • Artz알츠Mari마리 2016/07/25 23:48 #

    그리 멀리 있지는 않습니다만...음. 대단히 괴로워하고 있는 상태라고만.(...)
  • 마아가림 2016/07/29 17:03 # 답글

    으엉 일주일 동안이나 못봤었네용
  • Artz알츠Mari마리 2016/07/31 21:54 #

    비축분 푼 거라 다음 화는 느릴 예정입니다.
  • 서지원 2016/08/07 12:03 # 삭제 답글

    아 윤민혁씨의 화이트 데스가 완전히 막혀 버렸네요.
    이제 중간 중간 19편 이나 그런것들 더 못보게 생겼네요...
  • Artz알츠Mari마리 2016/08/07 15:06 #

    어쩔 수 없지요.(...)
  • Seattle 2016/08/10 10:44 # 삭제 답글

    1. 가장 가까운 휴게소가 3시간이라...갑자기 문명의 흔적이 고속도로밖에 없던 콜로라도 대평원을 운전하던 기억이 나네요. 그렇게 텅 빈 장소를 몇시간씩 운전하다 보면 사람 미치죠.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경험.
    2. 레미안이랑 떨어졌으니 칼의 이야기가 더 재밌어지겠군요. 후후.
    3. 도시에서 살다가 갑자기 시골로 뚝 떨어지면 울적해지기 딱 좋던데... 브루노에서 북부주 같은 시골로 뚝 떨어졌다가 제노바라는 대도시로 한달 동안만이라도 옮겨간다면 칼에게는 좀 위안이 될까요.
  • Artz알츠Mari마리 2016/08/15 13:05 #

    1. 영화 같은 데서는 참 넓고 달려볼 만한 땅이다 싶었는데 실제로는 그냥 지겨운 모양이네요.;;
    2. 레미안이 잘못했군요...ㅠㅠ
    3. 칼은 그런 거 생각할 겨를이 없죠..
  • 서지원 2016/08/20 20:14 # 삭제 답글

    전에 중간에 나온 총 2편의 19금편 좀 소장하고 싶은데 어떻게 안될까요?
  • Artz알츠Mari마리 2016/08/20 23:19 #

    유포는 좀 무리일 것 같습니다.-ㅅ-;;
  • 2016/08/22 17:01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Artz알츠Mari마리 2016/08/23 18:21 #

    대답이 늦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꽤 장기간(3개월) 집을 떠나 있을 예정이라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쓰는 댓글 외에는 팬픽 관련 작업이 곤란합니다. 기다려주세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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