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누나를 사랑한다.(97) ㄴ소년은 누나를 사랑한다

하지만 말이지. 이 이야기들에선 중요한 게 하나 빠져 있는 게 아닐까?

“저...”
조용히 있던 내가 조심스럽게 끼어들자, 루크레티아 양과 줄리오 중위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솔직히 조금 선망까지 담은 눈으로 두 사람을 보고 있었던지라, 나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그래도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헛기침을 한 뒤 물었다.
“지금까지 한 이야기들, 다 좋다고 생각합니다만... 그게 실제 정책에 반영된다는 보장은 있는 건가요?”
의외로 줄리오 중위는 시원하게 대답했다.
“없습니다.”
아아. 역시 그렇겠지.
“앞서 말씀드렸듯, 지금은 제 생각을 제1 해안파 수뇌부에 전하고 있는 단계일 뿐입니다. 기실, 숙부님을 비롯한 의원들이 제 말을 액면 그대로 따라주실 것인지는 지금은 당연히 알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안 되는 것 아닌가요? 라고 물으려는 순간, 루크레티아 양이 끼어들었다.
“아니, 우리 입장에서는 가능성이 있다는 걸 안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충분...한 건가요?”
아무런 보장도 없다면, 아틀리아 반도 내에서 사태가 이상한 곳으로 흘러갈 가능성은 여전한 것 아닐까?
“그럼요.”
루크레티아 양은 그 이상 말하지 않고 자신의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올렸다. 그 유유자적한 모습을 보자니, 어쩐지 더 물어봤자 소용없을 것 같은 분위기였기에,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까다로운 질문을 계속 날리는 대신,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몸을 기울여 탁자 위에 놓인 과자 하나를 집어 들었다.
“얍...”
덤으로 여태껏 루크레티아 양과 줄리오 중위 사이에 심각한 이야기가 이어지는 통에 조용히 앉아만 있던 엘레노아도 과자 두어 개를 집었다. 엘레노아, 먹고 싶은 걸 계속 참고 있었나 보구나.
“앞으로의 예정은 어떻게 되시는지?”
줄리오 중위의 물음에 나와 엘레노아는 자연스럽게 루크레티아 양에게 시선을 돌렸다.
“흐음?”
너무나 자연스럽고 우아한 자세로 차를 마시고 있던 그녀는, 우리의 시선이 집중되자 천천히 찻잔을 내려놓고선 줄리오 중위에게 대답했다.
“브루노로 돌아가서 차장님께 이런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더라...하고 보고를 드려야죠. 이 나라에 온 뒤로 가장 듣기 좋은 소리였다고.”
그 정도였나? 하지만 ‘듣기 좋다’에 방점을 두자면, 실속이 있다는 건지 없다는 건지 참 애매한 말인 것 같기도 하고.
“오늘 바로 돌아가실 생각이신지?”
“굳이 오늘 돌아갈 필요는 없지만... 무슨 일이라도?”
줄리오 중위의 계속되는 질문에, 루크레티아 양은 그가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눈빛을 달리하며 되물었다. 그러자 줄리오 중위는, 드물게도 다행이라는 표정으로-여전히 희박한 변화일 뿐이었지만, 이젠 이 사람의 얼굴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루크레티아 양에게 말했다.
“보여드리고 싶은 곳이 있습니다.”
“저에게 보여주고 싶으신 곳이라면?”
“뿐만 아니라, 아인 소위도 함께 가서 봐주었으면 합니다.”
에? 나도?
“함께 가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야 줄리오 중위가 진지하게 함께 가자고 권하는 곳이라면, 어디인지 한번 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었지만, 신분이 군인인 이상 당연히 임무가 먼저다.
“루크레티아 양이 가신다면, 저도 가는 게 당연합니다.”

그리고 루크레티아 양은 가기로 했다.
“다, 다 왔어요?”
“아...니. 혀 안 깨물게 조심해.”
말을 또 타야 될 줄 알았더라면 전 부디 남아 있겠다고 말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미 늦었나?
“그럭저럭 말을 타는 감각이 있으신 것 같군요.”
줄리오 중위가 슬쩍 뒤돌아보며 그렇게 말했다.
“아니, 자기 말고삐도 제대로 쥐지 못하는 사람에게 감각이 있다고 말씀하셔도 말이죠.”
그 말 그대로, 나는 내 말고삐를 쥐고 있지 않았다. 말에게는 미안했지만, 그렇게 빠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잔뜩 긴장해서 말 목덜미의 갈기털을 세게 붙잡고 있었다. 말의 입장에서는 웬 승마도 모르는 놈이 자기 머리채를 휘어잡는 건가 싶겠지만... 그래도 말이 참아주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고삐는 다른 말을 탄 줄리오 중위가 왼손으로 대신 붙잡은 상태였는데, 말을 차량으로 치자면 나와 엘레노아가 탄 말은 견인당하고 있는 셈이었다. 엘레노아는... 내 허리를 세게 붙잡고 등에 얼굴을 파묻은 상태였다. 문제는... 너무... 세게 붙잡아서... 숨쉬기가 힘들어!
“처음 말을 탈 때 가장 하기 쉬운 실수가 엉덩이에 체중을 실으려 한다는 거예요. 하지만 아인 소위는 제대로 두 발로 체중을 지탱하고 있군요.”
내 왼쪽에서 다른 말을 타고 함께 움직이던 루크레티아 양이 줄리오 중위의 말을 거들었다.
“그거야 이번이 두 번째니까요.”
알데인 소위의 말에 탔을 때 이야기다. 그때는 어차피 등자에 매달린 발받침에 내 발을 둘 수도 없었고, 내 개인적 사정상 지금 엘레노아가 하는 것처럼 안정적(?)으로 알데인 소위를 붙잡고 있을 수도 없었다. 결국 엉덩이와 다리에 있는 대로 힘을 주고 이상한 자세로 타야만 했고, 그나마 다리에 힘을 줘서 그랬는지 몰라도 허리가 그렇게 오래 아프지는 않았지만 한동안 뻐근했던 탓에 고생을 해야만 했다.
“루크레티아 양이야말로 어디서 승마를 배우신, 건가, 요?”
“책에서요.”
줄리오 중위만큼은 아니라도 꽤 그럴듯하게 말을 타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외교관들은 승마도 배워야 하는 건가하며 궁금해서 물어보니, 루크레티아 양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대답했다. 아아, 어쩐지 그럴 것 같았지. 괜히 물어봤다.(?)

아틀리아 자유국은, 국토가 분단되기 전이나 후나 전형적인, 덤으로 유명한 농업국이었다. 주민의 4분의 3 이상이 어떤 형태로든 농업과 관련된 삶을 살고 있었고, 제노바 같은 해안지대에 소재한 도시, 혹은 마리노 같은 산악 지역 한가운데 자리를 잡은 도시의 경우만 어업과 약간의 공업, 혹은 무역업으로 먹고 살고 있었다.
좋은 토질과 부지런한 농사꾼인 주민들의 특성 덕에,- 아, 물론 오늘날 디아나 지역이나 서부연방 공화국 농업지대에 자리한 어마어마한 규모의 농장과 비교하기는 어렵다는 단서는 달아야겠지만 -그래도 역사적으로 아틀리아 반도에 사는 사람들이 못 먹고 산 적은 별로 없었다. 그들의 식탁은 언제나 풍성했고, 지주들은 부유했다.
중앙 집권이 이뤄지지 않아서 국가가 너무 강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각 지방마다 강력한 애향심과 적당한 부, 탄탄한 조직력을 가진 농민들이 있었다. 그들은 중세와 근대에 걸쳐 공동체에 위기가 닥칠 때마다 녹록하게 볼 수 없는 강인한 병사가 되었다.
개개인의 덩치는 작았지만 농사일로 단련되고, 풍요롭게 잘 먹고 자라 강인한 신체가 있다. 다른 나라의 상비군들처럼 전쟁에 숙달되진 않았지만 동향 출신들로 구성되어 탄탄한 조직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런 병사들로 구성된 군대가 오늘날까지 아틀리아 자유국이 존속할 수 있게 해준 몇 차례의 승리를 가져온 원동력이었다.
문제는 현대에 들어서면서부터였다. 연합왕국에서 시작된 공업화의 물결이 전 세계로 번져가면서, 과거 십만 단위면 많다던 병력은 백만 단위를 헤아리게 되고, 기관총 등 새로운 무기의 등장으로 화력도 강력해졌으며, 동력의 문제도 인간과 말의 근육에 의존하던 것이 내연기관의 힘에 의존하게 되었다.
농업국가인 아틀리아 자유국이 이 흐름을 뒤처지지 않고 쫓아가기에는 벅찬 노릇이었다. 하지만 군문에 있는 사람들이 손을 놓고 있지는 않았다.

“이건...”
줄리오 중위를 따라간 곳에는 차량 격납고가 있었다. 규모가 작진 않았지만 사람은 몇 없었는데, 하나같이 정비복을 입고 있었다. 그들은 줄리오 중위를 보고선 반갑게 손을 흔들다가 그 뒤를 따라온 여자 세 사람(?)을 보고선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윽고 나와 엘레노아가 입은 옷을 보고선 갑자기 웃음을 지었다. 으음... 왜지?
“여기는 뭐 하는 곳인가요?”
루크레티아 양이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묻자, 줄리오 중위는 말에서 내리며 대답했다.
“공식적인 명칭은 2여단 특수차량 보관소입니다. 하지만 보통은...”
“보통은?”
“주차장이라고 부르지요.”
“......”
어딘가 심각하게 맥이 빠지는 호칭이다. ...그나저나 ‘연구회’라면 아까 들은 그곳인가? 줄리오 중위가 속한 여단 내부의 군사 문제 토론회?

우린 정비원들의 맹렬한 시선을 받으면서, 줄리오 중위의 뒤를 따라 격납고 앞에 도달했다. 정비원들의 시선은 역시 포근하면서도 단아한 분위기인 루크레티아 양에게 우선적으로 집중됐고, 내 뒤에 다소(?) 귀엽게 매달려 있는 엘레노아가 그 다음이었다. 흠...아인은 남자에게 인기가 없는 외모인 걸까? 그건 다행스러운 일인데.
“조심해서... 그래.”
“죄, 죄송합니다아.”
그래도 두 번째라 어찌어찌 말에서 내려선 엘레노아가 내리는 걸 안아서 받았다. 여러 사람이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엘레노아의 얼굴은 급격히 붉어졌다. ...버지니아 중사가 내 엉덩이를 밀어서 말 위에 올려줄 때, 내 얼굴이 아마 이런 느낌이었을까?
“줄리오 중위님. 여기서 보여주고 싶으시다는 것은 어떤 건가요?”
-덜컹-!!
루크레티아 양이 묻자, 줄리오 중위는 별 대답을 않고 대신 커다란 철문을 힘차게 끌어당겨 열었다. 새로 지었는지, 그 크기에 비해 부드럽게 열린 철문의 안쪽에 있는 것은...
“흐음? 트럭...은 아니군요.”
격납고 안에는 커다란 차량 10여 대가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얼핏 보기에는 트럭 같았지만, 곳곳에 각이 진 장갑판이 붙어 있고, 무엇보다도 뒷바퀴 부분이 전차나 장갑차처럼 무한궤도로 되어 있었다. 으음. 저걸 뭐라고 부르더라? 갑자기 생각이 안 나는데. 앞쪽이 일반 차량처럼 타이어로 되어 있고, 뒤쪽이 궤도라면...
“와. 반궤도 차량이네요? 저런 형식의 차량이 수송병과 교육장에 전시되어 있던 걸 본 적 있어요.”
엘레노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답을 내놓았다.
“맞습니다. 아틀리아 자유국에서는 처음으로 만들게 된 군사용 궤도 차량, 가칭 T1입니다. 대전차포나 기관포, 박격포를 싣거나 끌고 다니면서 보병을 지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렇게 말한 줄리오 중위는 천천히 격납고 뒤편으로 걸어갔다. 한창 일하던 중이었는지, 정비사로 보이는 사람들이 놀라며 이쪽을 바라보며 자기들 말로 뭐라고 중얼거렸다. 그러자 줄리오 중위가 뭐라고 설명하듯 그들에게 이야기했고, 곧 어설픈 미테란트어 인사말들이 날아왔다.
“안녕!! 만나서 반가워요!! 요즘 어떤가요?! 고마워요!! 당신은 어떤가요?!”
“...어, 좋아요! 반가워요!!”
뒤의 두 문장은 내가 답할 말이잖아, 이 사람아. 외국어 교과서 알파벳 다음 문단에 꼭 들어가는 형식의 인사(?)에 얼떨떨해하며 답하고 나니, 그런 만담을 보면서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줄리오 중위가 설명을 시작했다.
“T1은 연구회를 통해서 소요가 제기된 차량입니다. 우선적인 목표는, 기존에 말이 끌던 포를 대신 끌거나, 혹은 싣고 다니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도로는 물론, 야지에서도 말이죠.”
보직이 운전병인 엘레노아는 관심이 동한 듯, 돌아다니며 차량 여기저기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줄리오 중위는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띤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내게 말했다.
“하지만 저런 제한된 능력을 가진 차량조차도, 수입하지 않고 직접 만드는 건 나름대로 큰일이었습니다. 우리도 우리 손으로 이 정도야 할 수 있겠지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었는데, 어쩐지 드는 노력과 비용은 점점 커지더군요. 결과라도 좋았으면 모르겠습니다만...”
“결과가 어땠나요?”
“참담했습니다. 궤도를 너무 짧게 만들어 야지 주파 성능이 좋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차량에 실을 수 있는 중량을 분배할 수 있는 면적을 크게 하는 효과는 있었지만 말이지요. 그 다음에는 라스니아에서 수입한 엔진이 문제였습니다. 저 엔진실을 보시면 아시겠지만...너무 약해서 포를 끌거나 싣고선 당초 생각한 만큼의 주행 성능을 낼 수 없었습니다.”
줄리오 중위의 말을 듣고 보니, 차량 앞부분은 차대 크기에 비해 조금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작았다. 생각해보니 들어가는 엔진이 작다는 이야기도 되겠군. 그렇다면 당연히 힘이 떨어진다는 결론이 나온다.
“처음 생각한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보면, 사실상 실패였습니다.”
한탄과도 같은 말이었다. 3중대의 방호전차(보병전투차)나 우리 중대의 마더의 존재는 내게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지만, 다른 나라의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부러운 자산일지도 모른다는 점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그래도 계획대로 되었다면 지난 달 즈음에는 서른 두 대가 완성됐었겠지만 실제로는 생산이 지체됐고, 막 저것을 쓸 부대에 병력을 배치하고 훈련을 시작하기 직전에 아타만 군이 국경을 넘어섰습니다.”
결국 아무 데도 써보지 못했다는 이야기인가... 내 일은 아니었지만, 조금 씁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숙부님은 얼마 뒤에 이 차량을 장비한 부대들로 시가 퍼레이드를 해달라고 하실 생각이시더군요. 그렇게 자랑스럽게 시민들에게 보여주고 싶을 만큼 성숙한 부대도 아니지만, 아마도 다른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거겠지요. 아니, 어쩌면 조금 들뜨신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들뜬 상태라. 덤으로 다른 누군가라면, 아까까지의 이야기 흐름으로 볼 때는 산악파나 제2 해안파를 말하는 걸까?
“하지만 전, 아인 소위와 함께하면서 전쟁의 현실을 보고,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줄리오 중위는 지그시 눈을 감더니, 약간 낮아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우리 병사들은 강합니다. 연합왕국이든 아타만 제국이든, 심지어 귀국이건 그 사실을 비웃는다면 전력으로 부정해 줄 자신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그 병사들을 피만으로 이길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지금 이 정도의 차량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힘들어하는 이 나라의 상태로는 앞으로의 전쟁을 대비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줄리오 중위의 눈은 어느새 내 쪽을 향해 있었다. 버지니아나 네리아 중위의 눈빛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 그런데 루크레티아 양에게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었던 건가?
“그러므로?”
“앞으로의 전쟁에 함부로 끼어들어서도 안 된다는 것을.”
앞으로의 전쟁이라... 문득 일리야 중령에게서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의 숨이 막히던 느낌이 다시 떠올랐다.
“어...”
거기까지 말한 줄리오 중위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시 격납고 바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와 엘레노아, 덤으로 지켜보던 정비사들까지 황망해하며 그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루크레티아 양이 내 등을 툭 치면서 말했다.
“당신이 여기 있는 덕에 저분이 무척 솔직해지신 것 같군요.”
“네?”
놀라서 돌아보니 쿡쿡대며 웃고 있다.
“역시 당신과 오는 게 정답이었어요.”
“네? 그게 무슨...”
하지만 루크레티아 양은 대답하지 않고 그대로 줄리오 중위의 뒤를 따라 가버렸다.

줄리오 중위가 우리에게, 아니, 어쩌면 내게 굳이 그 차량들을 보여준 이유는 무엇인지 분명치 않았다. 루크레티아 양은 나름대로 그 이유에 대한 정답, 혹은 자신만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지만... 어쩐지 그걸 내게 말해주고 싶은 기색이 아니었기에 나도 따로 물어보거나 하진 않았다. 뭐, 말해주고 싶어지면 해주겠지. 신경이야 쓰이지만, 그런다고 어찌 될 일이 아닌 것 같다.
“해가 지네요.”
엘레노아가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로 말하기에 서쪽을 바라보니 어느새 날이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
“저기 소위님. 오늘 출발하게 될까요?”
“으음...모르겠는데. 왜?”
“피곤해서 운전할 자신이 없어서요.”
“그건 큰일이네.”
아무래도 익숙지 않게 말을 타고 돌아다닌 것 때문일까? 한편으론 말과 차가 그렇게 다른 걸까 싶기도 했지만, 뭐 그것도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을 테니까 이해는 간다. 문제는...
“...저, 죄송한데 등에 좀 기대서 가도 될까요? 어지러워서요.”
“으, 응?! 아, 응!!”
당황해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감사합니다아...”
엘레노아는 별 망설임도 없이 내 등에 얼굴을 묻고 편하게 기대왔다.
“으, 음.”
등 뒤로 여자아이의 부드러운 몸이 닿는 것이 느껴져 나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거기에 더해 내 군복 위로 엘레노아의 따뜻한 숨결이 느껴지는 통에, 나는 줄리오 중위의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잔뜩 긴장한 채로 말 위에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따라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뇨, 저희야말로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온 걸 맞아주셔서 고마워요.”
마침내 줄리오 중위의 커다란 저택이 다시 눈에 들어오는 거리에 이르자, 줄리오 중위와 루크레티아 양은 그런 말들을 나눴다.
“쉬었다 가셔야겠지요? 일단 다른 사람들에겐 이런저런 준비를 해두라고 지시했습니다만...”
“이 시각에 브루노로 출발하는 건 역시 무리일 것 같군요.”
줄리오 중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손님은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당연한 일정인가? 엘레노아도 지쳐버렸고, 나는 운전을 못 하니까. 어떻게 독방을 얻어서 적당히 쉬고 떠나면 되겠지?...라는 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저택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아까 우리를 맞이했던 나이 많은 사람이 난감하다는 표정을 짓고선 나타나 줄리오 중위의 귀에 대고 뭐라고 속삭였다. 그러자 무슨 일인지, 줄리오 중위의 얼굴이 살짝 굳는 것이 보였다. 의아해하며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자니, 줄리오 중위가 돌아서서 약간 다급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말했다.
“세 분, 죄송합니다만 아무래도 시내에 있는 숙소로 이동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네?”
돌연한 말에 놀란 내게, 줄리오 중위는 설명할 시간이 없다는 듯 말을 덧붙였다.
“일단 가시면 제가 연락해서 방을 잡아드리죠.”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요?”
“그게...”
“어머나!!”
그때, 복도에 있는 문 하나가 열리더니 예쁘게 차려입은 자그마한 갈색머리 여자가 나타났다. 역시 호빗답게 나이를 알기는 어려워 보였지만... 그래도,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거지나 분위기로 보자면 대대장이나 줄리오 중위보다 한참 어린 사람이라는 티가 난다. 똑같이 어려 보이는 얼굴의 호빗이라도 오랜 군생활로 붙은 관록이 행동거지로 드러나는 일리야 중령과는 달랐다. 대충, 알데인 소위와 비슷하거나 더 어린 정도일까?
“정말 융통성 없긴... 귀한 손님이 오셨다고 왜 내겐 이야기를 안 하셨을까?”
“마가레타.”
“하여간 당신은 너무 고지식해요. 덕분에 저는 손님이 왔는데도 아무런 준비도 해두지 않은 안주인이 될 뻔 했잖아요?”
일부러 우리더러 들으라는 듯이 미테란트 공용어로 줄리오 중위에게 핀잔을 준 그녀는, 뒤쪽에 서 있던 우리 셋을 향해 치맛자락을 붙잡ᄋᆞ 살짝 들어올리며 고풍스럽게 인사했다.
“처음 뵙겠어요. 저는 마가레타 펠리스. 이 저택의 ‘임시’ 안주인이랍니다.”
우아하게 감았던 눈을 살짝 치뜬다. 예의바른 태도와 별개로 예쁜 갈색 눈동자가 우릴 관찰하듯이 훑는 것이 언뜻 보였다.
“저도 만나서 반갑습니다. 전 루크레티아 폰 디제, 미테란트 외무성 소속이고, 뒤의 두 사람은 육군의 아인 베리 에스코터 소위와 엘레노아 필비 일병이에요. 미리 인사드리지 못해서 죄송하게 됐습니다.”
고풍스러운 인사에 어떻게 답하나 순간 고민하고 있자니, 루크레티아 양이 먼저 나서서 공손하게, 입은 정장에 어울리게 허리를 숙여 답했다. 그 모습을 보고 어떻게 해야 할지 대충 감이 와서, 모자를 벗어 가슴팍에 대고 간단히 목례를 했다. 엘레노아도 고민하고 있었는지, 나를 보고 그대로 따라했고.
“아인 베리 에스코터 소위입니다.”
“엘레노아 필비 일병입니다.”
줄리오 중위의 부인, 그러니까 마가레타 씨는 고개를 끄덕인 다음 나를 올려다보면서 친근하게 웃어 보였다.
“안녕하세요, 소위님? 당신의 이야기는 남편에게서 몇 번 들었답니다. 물론 신문에서도 이름을 보았고요. 이번 전쟁에서 제 남편과 함께 싸우셨다면서요?”
신문...[제노바 트리보나]인가? 하아. 뭐, 그 신문이야 그렇다 치고, 줄리오 중위가 자신의 아내에게 나에 대해서 어떻게 말했는지는 조금 신경이 쓰인다만...
“네. 아틀리아 자유국에 들어온 뒤로 줄리오 중위님의 중대와 함께 행동했었습니다.”
대답하면서 슬쩍 줄리오 중위 쪽을 바라보니, 무표정한 건 여전했지만 어딘가 불안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뭐가 저렇게 불안한 걸까?
“남편의 전우 분에, 미테란트의 외교관 분까지 이렇게 제 손님으로 오시다니. 오늘은 정말로 특별한 날이네요. 아틀리아 자유국에선 이런 날은 그냥 지나치지 않는답니다.”
“마가레타.”
-짝-!
줄리오 중위가 뭐라고 하려는 듯이 끼어들었지만, 마가레타는 그럴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 손뼉을 쳤다. 그 바람에 줄리오 중위의 말이 끊기자, 그녀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자기 할 말을 이어서 했다.
“......”
“아틀리아에서는 말이죠, 먼 곳에서 오신 손님들을 대접할 때에는 사흘을 들인답니다, 그리고 복잡한 일들은 그 뒤에 하는 게 풍습이에요.”
“...사, 사흘?”
이 복잡하고 바쁜 사회에서 그 무슨 느긋한 일정이란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나도 모르게 아연해졌다. 그런 내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신이 난 듯 말을 이었다.
“네! 사흘이요. 첫날은 다과와 차를 낸 자리에서 마을, 혹은 도시 유지들에게 손님의 소개를, 둘째 날은 융숭한 저녁 만찬으로 잔치를, 셋째 날은 사람들이 가장 좋은 옷을 꺼내 입고 모여 무도회를 여는 거죠.”
참으로 목가적인 전통이다. 하지만-
“마가레타, 이 분들은 바쁜-”
“그래서 오늘은 차와 과일, 과자를 이미 준비해 뒀답니다.”
“하지만-”
“당연히 제 친구들도 와 있고요.”
“그렇게 멋대로-”
“자기 집에 온 손님을 대접하는 건 남자가 아닌 안주인의 책임이잖아요? 설마, 이분들을 그냥 보내시려고 하신 건 아니겠죠, 당신?”
“그렇지는 않-”
“그럼 제게 맡기세요.”
...아아. 한때 영웅의 자질이 보인다고까지 생각했던 줄리오 중위가, 아내 앞에선 말을 채 잇지 못하고 있다. 함께 사는 경우가 거의 없고, 따라서 서로의 생활에 깊이 간섭하지 않는 미테란트의 남녀 관계만 생각하고 있던 내게는 그 광경이 대단히 신기하게 보였다.
이런 게 바로 미테란트나 아타만을 제외한 국가들에서의 일반적 부부사이라는 건가? 눈앞에서 그 분위기를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라서, 머릿속에서 별의 별 감상이 다 떠오른다. 다른 나라의 부부관계가 수백 년 전의 미테란트에서 그랬던 것처럼 수직관계에 가깝다는 소리는 몇 번인가 들었는데, 반드시 그렇게만 볼 건 아닌 걸까?
“자, 가시죠?”
“어어?”
어느 틈에 다가온 마가레타 씨가 내 팔짱을 낀다. 키 차이가 있으니 당연히 난 허리를 숙여야 했지만, 그녀는 별로 아랑곳하지 않는 듯, 웃음을 띤 채로 어딘가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루크레티아 양을 돌아보니,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살짝 젓고는 내 뒤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끼이익-!
“자, 잠깐만...!”
이대로 가다가는 꼴사나온 자세로 사람들 앞에 노출되겠다 싶어서 급하게 몸을 바로잡으려고 하니, 다 안다는 듯 마가레타 씨가 마침내 팔짱을 풀었다.
“잠시만요, 펠리스 부인?”
급하게 뒤따라온 루크레티아 양이 나를 구하기 위해 나섰다.
“저는 상관없습니다만, 아인 베리 에스코터 소위는 아틀리아 어를 할 줄 모르는데... 대뜸 이곳 분들이 모여계신 곳에 데려간다고 해도 그다지 유의미한 회화가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긴 힘들지 않을까요?”
루크레티아 양의 말을 들은 마가레타 씨가 잠깐 생각하는 것 같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그것도 그렇군요. 모셔온 분들 중에는 저나 남편처럼 미테란트 어를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몇 분 없는데.”
그래도 아타만 어는 잘 하고 다른 말들은 그럭저럭 할 줄 아는데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루크레티아 양이 모처럼 빼내주려고 하고 있는데 눈치 없는 소리를 하면 안 되겠지 싶어 입을 다물었다.
“그래도 걱정하지 마세요. 몇 분 정도는 저처럼 미테란트 어를 할 줄 아시고, 소위님과 이야기를 하기 힘들다면 서기관님과 대화하는 것도 안에 계신 분들께는 즐거운 경험일 거라고 생각해요.”
해석하자면, 그래도 나는 데리고 들어가야겠다는 건가?
“그건 문제가 없습니다. 오히려 이 지역 분들과 말씀을 나누는 건 제가 즐거워해야 할 일인걸요?”
루크레티아 양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말했다. 아아. 지역 명사들의 부인이나 딸들이 모인 자리라면 옷차림을 더 단정하게 해야 할 텐데 이렇게 갑자기...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루크레티아 양이 내 앞으로 다가왔다.
“잠시.”
“엣...?”
루크레티아 양의 커다란 눈동자가 가까워져서 나도 모르게 물러서려고 했지만, 루크레티아 양은 손을 내밀어 내 옷섶을 쥐고선 내 옷매무새를 가다듬어 줬다.
“미안해요. 이런 임무까지 시킬 생각으로 데려온 건 아닌데.”
“저야말로 죄송합니다. 좀 더 단정하게 있었어야 하는 건데.”
루크레티아 양은 대답하지 않고 빙그레 웃으며 군복 어깻죽지 쪽을 탁탁 털어주고선 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미테란트의 여군들은 다들 근육질에 키가 큰 분들이라고 들었는데, 역시 소문은 믿을 게 못 되는군요...라고 말씀하시네요.”
다소 나이가 든 티가 나는 호빗 여성 한 명- 제노바 해안경비대장의 아내란다 -이 호들갑스러운 말투로 뭐라고 하는 걸 루크레티아 양이 입술을 작게 달싹거리면서 통역해주었다. 확실히, 국경경비사단의 산악엽병들 중에는 그런 사람들이 유난히 많긴 했다.
“소위님께서는 군대에서 무슨 일을 하시는 건가요? 비서? 아니면 소위님도 혹시 말을 타고 싸우시는 건가요? 마리노의 그 별난 아이처럼?”
마리노의 별난 아이? 누구를 말하는 거지?
“아, 아닙니다. 저는 장갑차를 타고...”
“어머나!!”
“대단해요!!”
말도 끝나기 전에 이 웬 호들갑이란 말인가. 대학에서 주변 여자애들이 귀여운 남자아이 내지 맛있는 간식을 볼 때나 내던 소리다. 이게 그렇게 흥분할 일인가? 전차나 전투기를 탄다고 하면 반응이 어떨지 궁금해진다.
대화는 한동안 그런 분위기로 계속됐다. 루크레티아 양과 눈을 마주치니, 그녀는 미안하다는 듯 애매하게 웃으면서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아, 참고로 줄리오 중위는 이 방에 따라 들어오지 않았기에, 이 방은 ‘공식적으로는’ 여자들만 모인 상태였다.
루크레티아 양은 홀로 이 생각지도 않은 다과회를 감당할 생각이었던 모양이지만, 아무래도 아틀리아 자유국의 여성들이 보기에 ‘군복을 입은 여자’ 쪽이 더 흥미를 끄는 존재였던 모양이었다. 물론, 아틀리아 국경경비대에도 알데인 소위나 테레사 소위, 타티아나 하사와 같은 여성들이 있긴 했지만, 그녀들이 행정직이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알데인 소위 쪽이 극히 예외적인 존재인 듯했다.
“육군에는 여러분과 같은 호빗들도 많습니다. 제 상관이신 일리야 라스칼 중령님도 그렇고요.”
“어머나! 그 분은 어떤 분인가요?”
“열여섯 살일 때 아타만 제국군과 싸움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계속 군인으로 계신...분입니다.”
열여섯 살. 그 단어를 내뱉는 순간, 일리야 중령이 술에 취해 울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또 다른 ‘호들갑’이 들려왔다. 미테란트 공용어를 어느 정도 할 줄 아는 사람이다.
“열여섯 살이라니! 어쩜! ...저는 그 나이에 결혼해서 쭉 집안에만 있었는데, 그 분은 많은 곳을 다니면서 이런 저런 걸 많이 보셨겠네요. 부러워요.”
순간적으로 머릿속에서 뭔가 쨍그랑 하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부럽...습니까?”
너무 생각해보지도 못한 말이었기에 그랬을까?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루크레티아 양은 뭔가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렸는지 내 눈치를 살핀다.
“네! 저도 가끔 여기저기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미테란트 말도 그래서 배웠고요.”
“그러...시군요.”
확실히, 뭐라고 한마디 쏘아붙여주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일리야 중령의 인생에 대해 아는 입장에선 말이다.
...하지만 나도 예전과는 다르다. 명색이 장교인 아인을 연기하는 이상, 머리에 피가 오른다고 해서 일일이 일리야 중령에게 대들듯이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고개를 쳐드는 흥분을 가라앉히면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겠군요.”

호들갑스러운 여성들 사이에 둘러싸여 이런 저런 이야기에 적당히 응대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자니, 이런 분위기에서 들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던 질문이 갑자기 치고 들어온다.
“아타만 제국군이 다시 돌아올까요, 소위님?”
어색하거나, 조심스러운 기색이 있는 다른 사람들의 미테란트 공용어와 달리 매우 유창한 발음이었다.
“......”
덤으로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중요한 질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와 루크레티아 양의 주목도도 자연히 더 높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 두 사람의 시선을 받은 질문자가 조금 놀란 것 같은 눈을 하더니 이윽고 깜빡했다는 듯 자기 소개를 했다.
“아, 전 메인 쿤 상회의 프리스티나 크라운이라고 합니다.”
상회? 아니, 그보다 아까까지 저런 금발의 여자아이가 이 자리에 앉아있는 건 못 봤는데? 내 관찰력이 그렇게 안 좋았나? 저렇게 눈에 띄는 사람이 있는 줄도 몰랐다니.
그런데 그건 그렇고 이 질문, 내가 쉽게 답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싶다. 손을 살짝 들어 양해를 구하고,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최대한 천천히, 향을 음미하며 한 모금을 마셨다.
“.....”
이건 나.
“.....”
이건 프리스티나 크라운 씨.
“.....”
이건 내가 차를 천천히 마시며 시간을 끌 때 나를 도와서 대신 답을 해주리라 기대했던 루크레티아 양. 설마 이거 나보고 대답하라고 아무 말도 안하고 계신 건가요하고 생각하며 슬쩍 곁눈질을 했는데,
“......”
루크레티아 양의 표정이 변해 있었다. 아니, 사실 눈에 띄는 변화는 아니었지만, 그녀의 눈빛이 아까 전과는 달랐다. 뭐라고 해야 하나? 일리야 중령의 그것처럼 뭔가 무서운 느낌이 드는 눈빛이었다. 그녀의 그런 시선이 향하는 곳은... 저 프리스티나 크라운인가 하는 사람 쪽인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그건 아타만 제국이 대륙에 다시 욕심을 낼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이야기도 되는데, 결국 그건 아타만 제국 사람들이 마음먹기에 달린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루크레티아 양이 내 대신 대답해줄 분위기가 아니었기에, 나는 내 솔직한 의견을 말했다. 하지만 상대는 이 정도로 넘어가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질문을 바꿔 볼까요. 아타만 제국군은 이곳 아틀리아 반도에 다시 상륙할 힘이 있을까요?”
그때서야 난 질문자를 보다 유심히 바라보았다. ‘연합왕국 어 이름을 쓰는 상회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금발의 여자아이를. 그래, 그녀는 제노바에 있는 연합왕국 정보원일 가능성이 있다. 루크레티아 양이나 줄리오 중위가 나름대로 주의한다고 한 건데, 정작 엉뚱하게 줄리오 중위의 아내 쪽에서 문제를 터뜨린 건가?
“알 수 없지요. 북해 먼 곳의 아타만 제국 현황을 모르니까요. 그저 전 이 땅이 평화롭기만을 바랍니다.”
어디로 이야기를 뻗어나가게 하려고 하는지 대충 짐작은 대충 갔다. 상륙할 힘이 있을 것 같다고 하면 우리 군대가 여기 머물 거냐는 식으로 질문을 이어갈 것이고, 역으로 상륙할 힘이 없을 것 같다고 하면 아틀리아 자유국의 무력이 아직 빈약한데 다시 오지 않는다는 말에 근거가 없어 보인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겠지. 어느 쪽이든 이 자리에 있는 여성들에게 미테란트에 대한 주의를 환기하고 싶다는, 다소 소심한 공격이다.
“그건 동감이네요. 저도 이 도시가 평화로웠으면 좋겠거든요.”
다행히 나를 더 찔러보기를 포기한 것 같았다. 힐끗 곁눈질해서 루크레티아 양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변한 눈빛 그대로, 프리스티나 크라운 씨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그 이유를 알게 된 것은 나중의 일이었다.

다과회가 끝난 것은 마가레타 씨가 나를 끌고 간 뒤로 대략 1시간 30분 정도가 지나서였다. 그 다음 순서는 당연하게도 저녁. 다과회에 있던 몇몇의 여성들과 우리 일행, 그리고 현재 이 집의 주인 격인 줄리오 중위까지 해서 10여 명이 그 짧은 시간에 잘도 준비했다 싶은 푸짐한 식탁에 초대받았다.
몇 번이고 이야기하지만 아틀리아 자유국의 음식은 맛이 좋아서, 야전에서 취사병들이 집단 배식용으로 만든 음식만 먹던 나나 엘레노아에게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조금 신경쓰이는 일이 있었는데, 아까 신경이 쓰이는 질문을 하던 프리스티나라는 여자가 어느 틈에 사라진 것이었다. 저녁 식사는 사정이 있어 참여하지 못한다는 정도의 평범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연합왕국의 상단 사람이라.
루크레티아 양 쪽을 흘낏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줄리오 중위나 마가레타 씨와 담소를 나누고 있어서, 나처럼 프리스티나라는 여자가 이 자리에 없다는 사실을 신경을 쓰고 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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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부터 모처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하필 전체 조직 중에서도 일이 꽤 많은 곳이라 심심찮게 토요일까지 잡아먹네요.

덧글

  • 미나 2017/02/27 20:31 # 삭제 답글

    오랜만에 연재라니!!! 반갑고 고맙숩니다!!
  • Artz알츠Mari마리 2017/02/28 00:36 #

    아직 찾아주신다니 저도 반갑습니다.ㅎㅎ
  • 마아가림 2017/02/28 06:02 # 답글

    너무나도 오랜만이라서 앞 내용을 다시 읽고서야 스토리가 기억났습니다;;
    작가님은 어떻게 앞 내용을 기억하시는지...?
    자기 작품이라도 기억이 흐릿해질수도 있다고 생각되는데요
  • Artz알츠Mari마리 2017/03/01 02:00 #

    몇 년 되어서 그럴 때도 있긴 한데, 일단 제가 쓴 거라 원고는 가지고 있거든요... 가끔 앞부분도 다듬기도 하고요.
  • 2017/03/04 20:25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incle 2017/03/12 20:48 # 답글

    오오 오랜만의 연재군요!
  • slrsodla12 2017/06/05 22:14 # 삭제 답글

    오랜만에 정주행중인데 중요한 52화를 볼수없군요! 원작자분 사이트도 먹통이고요... 어디서 볼수없을까요 ㅠㅠ
  • catsi 2017/09/04 13:26 # 삭제 답글

    이런 뒷 이야기 좋아요...원작에선 아타만전역에 대한 이후 아틀리에의 상황정리가 빠르게 지나가고 이후 어떤 언급도 없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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