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랑 감상 도서기록부(...)



인랑 감상:(스포일러 주의)


*. 부족한 점들

1. 설명이 좀 더 필요한 영화였다는 점은 맞음 - 설정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 없이는 슬쩍슬쩍 지나가는 설명을 하나도 놓치지 않아야 영화에서 준비한 반전 같은 것들을 이해 가능. 설명을 빼놓지 않고 하긴 하는데 너무 짧게, 지나가듯이 함. 일반적인 관객의 눈높이에 그것 정도로 모든 걸 이해해주길 바라는 건 좀 어려울 듯. 오락 영화로써는 실격.


2. 1에서 지적한 문제로, 일종의 내무군 조직인 '특기대'의 일반 구성원들과 그 내의 암살단 조직인 '인랑'을 구분해서 생각하지 않으면 한효주가 마지막에 우는 장면을 이해하기 어려운 게 당연. 

"이럴수가, 순박한 일반 특기대(?)인줄 알았던 사람이 특기대 내부 사조직(=인랑)의 일원이었다니!!"(감독의 의도)
"뭔소리여 쟤 내무군(not 인랑인데 인랑이라고 생각)인 줄 몰랐어?! 왜 새삼스럽게 놀란 듯이 울어?!"(설정 잘 모르고 설명 잘 안 들은 관객의 생각)

"아씨 예고편부터 시작해서 주인공이 인랑이라고 실컷 말해놓고 이제와서 그걸 반전이라고 내미냐?!"(뭘 좀 아는 관객)


3. 역시 1에서 지적한 문제로, 공안부와 특기대에 대해선 좀 더 알기 쉬운 설명을 포함한 장면이 있었어야 할 듯. 가령 공안부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국정원 국내부파트의 일부를 떼서 만든 곳이고, 특기대는 행정자치부 산하에 러시아의 내무군이나 프랑스의 국가헌병대 같은 조직을 아예 새로 만든 곳이라는 식으로 2018년을 사는 관객들이 따라갈 수 있는 연결고리를 제시하고, 그 둘이 사이가 좋을 리가 없다는 것을 몇 차례의 가상 충돌 사례(권한 등)로 서술했으면 나았을 듯.



*. 해석이 필요한 점들


4. 영화를 보고 이해하는 데 필요한 것은 세 가지 포인트. 첫째, 신생 내무군(특기대)과 공안부의 수싸움, 둘째, 특기대이자 인랑인 임중경(강동원)의 역할갈등(조직의 일원 vs. 개인), 셋째, 이윤희(한효주)의 고단하고 지친 심리상태.


5. 공안부와 특기대의 수싸움은 원작과 유사. 공안부가 특기대의 손바닥 위에서 놀고 있었다는 점 정도만 알면 큰 이해에는 무리가 없음. 

 다만 언급으로만 나오는 'VIP'가 문제인데... VIP가 특기대와 공안부의 싸움을 붙였을 것. 정치 혼란 속에서 거의 내전상황인데 특기대의 역할은 누군가가 해야만 함. 하지만 5년 전 과천에서의 초대형 참사로 특기대의 이미지가 워낙 안 좋음. 공안부 주도로 특기대 임무를 경찰에게 맡겨보려고 한 건 맞을 듯. 문제는 공안부 역시 뒤가 구리다는 거였고, 특기대가 그걸 알아내서 'VIP'에게 올림. 거기서 승부가 이미 났다고 봐야 함.(대통령 비서실장이 특기대 방문한 거 보면 그때 이미 결론이 나있었던 듯)


6. 임중경(강동원)이 원래 늑대 따위 아니라고, 책꽂이에 꽂힌 책 체 게바라 평전 등을 예로 드는 사람이 있었는데... 맞는 말임. 원작과는 크게 다른 점임. 후세가 순박한 늑대였다면 임중경은 그렇지 않음.

 아무려면 특기대 대장인 장진태(정우성)가 비밀리에, 무려 사조직인 '암살단'을 꾸리면서 생각없이 명령만 따르는 놈을 집어넣었을 리가 없음. 

 '늑대'(후세)가 원작에서 그냥 말잘듣는 조직인이었다면, 영화의 늑대는 신념과 조직목표를 일치시킨 쪽. 머리도 있고 실력도 있음. 조직 간 항쟁에도 자발적이고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입도 무거움. 

 장진태(정우성)가 마지막에 대장 짬먹고 가치무치 프로텍트 기어 레슬링을 한 것도, 특기대 시작부터 함께한데다가 머리도 있고 실력도 있는, 기대주를 그냥 떠나보낼 수 없어서였을 것임. 그냥 기대주 정도가 아니라 그야말로 형제같은 관계. 원작의 후세와 그 윗사람들 관계와는 다름. 도저히 그냥 보낼 수가 없음.

 그러니 그냥 처분하지 않은 건 임중경(강동원)의 입이 무겁다는 것에 대해 믿음이 있어서이고, 이윤희(한효주)를 마음만 먹으면 제거할 수 있기도 하니 봐준 듯... 원작보단 많이 인간적인 조직이 되긴 한 것 같은데...


7. 이윤희(한효주)는 여러모로 힘든 처지. 몸담고 있던 섹트는 슬슬 정리단계에, 붙잡혀 있던 와중에 수뇌부가 공안부 돈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아버림. 실망감 때문에 그런 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을 것임. 또 아픈 동생이 있고 그러니 운동권을 계속하는 데에는 위기감이 들었을 것이고, 공안부랑 얽히기도 했고...

 하지만 공안부는 철저히 자신을 이용함. 감사기관 사람을 쏴죽이게 하고, 이젠 특기대를 박살내는 데에 이용하려고 함. 한상우(김무열)가 대하는 태도를 보면 인간적이지도 않음. 특기대 박살내고 나선 입막음 당했을 것이 분명함. 공안부 내에는 임중경(강동원) 같이 최후에 힘이 되어줄 만한 사람이 없었음. 본인도 어느 정도는 예상했지만 달리 길이 없어서 프락치를 계속하고 있었을 것임. 동생이 아프니 도망도 못 감.

 부모님도 돌아가셨고, 여동생은 자기 영향으로 운동권에 빠지더니 폭탄 셔틀하다가 자폭... 기가 막히는 노릇이라 눈물도 안 나왔을 것임.

 그 와중에 임무 때문에 마주치게 된 임중경(강동원)은 군인(내무군이지만)답게 무뚝뚝하지만 마음 속에 상냥함이 있음. 그게 이윤희의 여동생이 죽는 걸 막지 못한 죄책감 때문이든, 젊음 때문이든... 나중에야 처음부터 비밀임무를 띠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지만 임중경 역시 전적으로 연기였다면 이윤희가 속지 않았을 듯.

 부모님도 없고, 의지하던 조직도 사실은 썩은 데다가 궤멸에, 이용만 하고 여차하면 두들겨 패는 공안부에, 아픈 동생 때문에 도망도 못 가고, 조직, 그것도 국가조직 간 항쟁에 동원된 처지인데 이대로 있다가는 약속이고 뭐고 입막음으로 제거당할 것 같고... 임중경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함.

 하지만 임중경은 그냥 성실한 특기대(내무군) 군인이 아니라 그 속의 암살 사조직인 '인랑'이었고, 그녀 자신이 그를 이용한다는 생각에 죄책감을 품고 있었지만 알고보니 손바닥 위에서 놀고 있었음. 작중 기준으로 충격이 컸을 것임. 문제는 관객이 그걸 전혀 알아듣지 못하거나 이미 알고 있었거나 두 부류 뿐이었다는 점... 



 *. 세세한 부분들


8. 남산타워 커플 번지점프는 아무래도 옛날에 디펜스코리아에서 정X찬 이라는 분이 연재하던 소설에서, 남산타워를 점거한 북한군 특수부대원 중 하나가 국군 특전사부대원들이 USAS-12를 앞세우고 진압하러 올라오니 라펠링해서 튀던 대목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 부분을 눈팅하던 사람이 집어넣은 거 아닐까 하고 의심 중. 10년도 더 전 부분이고 하니 밀덕바닥에서도 오래된 사람들만 '아 그거'하고 생각할 부분인데...


9. 지하 전투신은 원작과 꽤 다름. 공안부 쪽이 수적으로도 그렇고 장비로도 그렇고 준비를 많이 하고 투입됨. 벽에 붙이는 폭탄으로 압사싴키려고 하기도 하고, 판저파우스트-3 대장갑모드로 골로 보내려고 하기도 하고, 와이어로 끌어와서 포박하려고 하기도 함. 

 아무래도 한상우(김무열)가 원래 특기대원이라 그런지, 파워드 아머를 착용한 상대를 제압하기 위한 수가 여러가지 준비되어 있었음. 

 아마도 한상우(김무열)가 공안부장의 신뢰를 얻었던 것도, 작품 시작 전에 한상우가 대 특기대 진압 준비(장비 및 훈련)를 주도적으로 하면서 눈에 들어서였을 것이기 때문. ...하지만 꼬인 지형에서 난전이 되니 역시 스펙이 깡패. 무적의 방어력과 공격력과 피지컬의 승리. 단 한명에게 몰살. 그사이 본진은 특기대 본대에게 싹 털리고 수장은 정국혼란의 책임을 고스란히 덮어쓰게 됨. 실제로 섹트와 거래하기도 했고.


*. 엔딩


10. 임중경(강동원)은 후세와 다름. 후세가 양심을 죽이고 조직에 일체화되는 길을 택했다면 임중경은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가?'는 의문을 제기하고 스스로 판단함. 기관 사이 항쟁에 주도적으로 끼어들어 연극을 할 정도고, 부대장이 암살단에 뽑을 정도면 피지컬만 있는 후세와는 이미 지적 수준이 차이가 남.

 한 개인이 시대 속에서 때로는 주도적으로 살다가, 때로는 아무 짓도 안했는데 무력하게 짓밟혀 압살당하는 결말은 이미 여러 매체, 여러 작품에서 본 바가 있음. 프랑스 대혁명, 러시아 혁명, 2차 세계대전, 한국의 해방정국과 한국전쟁... 하물며 영화의 내전 상황에서, 이윤희(한효주)처럼 복잡한 게임에 휘말린 힘없는 여성이면 정말로 살아남기 어려움.

 임중경(강동원)은 5년 전 과천에서 죄없는 여고생들을 본의아니게 MG3로 갈아버린 건으로 인해 '그래야만 하는가?'라는 의문을 늘 마음 속에 품고 살았고, 그건 마침 부대장인 장진태(정우성)도 마찬가지였음. 두 사람이 하는 걸 보면 특기대(내무군) 자체가 암살도 불사할 정도로 굉장히 신념이 두터운 집단이고, 그 대의명분은 아마도 '통일조국에서 국민이 평안하게 사는' 비전일 가능성이 높음. 그 '평안하게 살아야 될 국민'에는 죄없이 죽은 여고생들이 들어 있었고, 이윤희 또한 아슬아슬한 경계에 서 있긴 하지만 굳이 빼야 할 이유도 없었음. 그게 이윤희의 행운. 입막음조로 돈을 주고, 아픈 동생과 함께 지방에서 조용히 살 수 있게 해줌.

 물론 임중경(강동원)처럼 특기대 내부에 발언권이 센 고참 대원(처음에 개인 문제로 돌려버리는 게 낫지 않냐고 할 때 장진태가 그렇게 버림돌로 쓸 수 없다고 할 정도)이 지원하지 않았다면 그녀 역시 조용히 죽었을 것임.



*. 아쉬운 점


11. 좀 이해가 쉽게 만들어주면 덧나나... 영화관 뒤쪽에서 일어서던 사람들이 뭘 본 건지 모르겠다고 할 정도면 전달력에는 확실히 문제가 있는 듯. 신파/멜로/액션이야 70년대 영화도 찾아보는 사람에게는 별로 아무렇지도 않지만, 최소한 이야기는 확실했으면. 


덧글

  • 로그온티어 2018/07/30 02:02 # 답글

    부분적으로 새로운 해석을 보게 되네요. 일단 잘 읽었어요.

    넷플릭스 버전을 위해 나중에 새로 편집을 한다하니 그 버전이 어쩌면 감독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악마를 보았다]에서 다양한 엔딩을 찍어뒀던 김지운이었으니, 어쩌면 새로 편집하는 과정에서 극장판과는 다른 버전의 [인랑]과 버전이 튀어나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 전뇌조 2018/07/30 12:58 # 답글

    6번에 대해서 같은 해석을 했습니다만, 그러기엔 좀 더 사전설명을 해 줬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껏 그런 해석을 할 만한 소지가 극초반에 나오는 "특기대 초반부터 역사를 함께해 온 친구입니다 " 이 대사 한줄밖에 없으니....

    하다못해 초반 훈련때 치고박고 한 다음에 그럴듯한 말이라도 몇 마디 해 주든가.


    11번에 강하게 공감하고 갑니다.
  • 마아가림 2018/09/03 20:51 # 답글

    강동원이랑 쁘로딱-뜨 기-아- 가 멋있으면 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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