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 감상(스포일러 있음)(1) 도서기록부(...)


잊어먹기 전에 적어두려고 함.


스포일러 주의!!!!!!!!!!!!!!!!!!!!!!!!!!!!!!!!!!!!!!!!!!!!!!!!!!!!!!!!!!!!!!!!!!!!!!!!!!!!!!!!!!!!!!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는 어두운 고속도로를 헤드라이트에 의지해 나아가며, 앞날의 희망을 이야기하던 사라 코너에게서 이어지는 이야기다.



20세기 말엽인 1990년대 초, 정해진 운명은 없다며 희망을 이야기하던 전작의 엔딩과는 달리, 2020년을 앞둔 지금, <다크 페이트>는 불행을 예고하는 사라 코너의 절규, 그리고 구작에서 미래와 희망을 상징하던 존 코너가 화창한 대낮의 해변가에서 마치 망령처럼 등장한 또다른 터미네이터, 그것도 존이 믿던 T-800과 똑같이 생긴 터미네이터(아놀드 슈왈제네거)에게 살해당하는 충격적인 장면으로 시작한다.

-원래 지난 터미네이터 시리즈, 그러니까 1과 2는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는 어찌보면 생경하기까지 한, 냉전 당시의 핵전쟁에 대한 숨막히는 공포를 담고 있었다.



스카이넷은 인류에게 손쉽게 대타격을 주기 위해 핵공격을 감행, 소련, 혹은 러시아와의 핵전쟁을 유발했고, 문명의 기반을 파괴당한 인류는 스스로 만들어낸 재앙에게 사냥당하는 도망자 신세가 되는 것이 이 세계의 인류의 운명이었다.
그 정해진 파멸의 시나리오 앞에 인류는 거세게 저항하고, 수세에 몰린 스카이넷은 과거를 뒤틀기 위해 터미네이터를 보내 두 차례 개변을 시도한다. 하지만 과거의 사이버다인 사가 파괴됨으로 인해 스카이넷은 오히려 자신이 개변당하는 신세가 되고, 결국 스카이넷이 촉발한 전면 핵전쟁에 의한 인류의 파멸은 오지 않았다.

-냉전도 끝나고, 세상은 새로운 기술과 문명의 발전 속에서 희망을 노래했다. 정해진 파멸은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오늘날의 우리는 핵전쟁과는 다른 또다른 공포 속에서 살고 있다.

스카이넷이 사라졌지만, 어리석은 인류는 또다시 똑같은 화근을 만들어내고, <리전>이라 이름붙은 새로운 AI 군단의 공격에 인류는 개변되기 이전의 것과 하등 다를바 없는 운명을 맞이한다.
미래와 과거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복잡하게 얽힌 나선의 '시간선' 속에서, '역사'는 다시 한번 반복된다. 사라져버린 희망인 존 코너 대신 다른 리더가 등장하고, 역시 어려움을 겪은 리전은 과거를 뒤틀기 위해 인간을 닮은 살인기계, Rev(어쩌면 Reverse라는 뜻일지도?)를 보내 개변을 시도한다...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는 과거 1, 2편에서 우리가 겪고 있던 현실, 즉 핵전쟁이라는 알기 쉬운 공포가 지나간 뒤의 이야기를 다룬다. 1, 2편의 화자인 사라 코너가 어두운 고속도로를 다시 달려가기 시작한 뒤, 세월은 30년이 흘렀고, 그 사이 흥행과 평가 면에서 실패했던 수많은 터미네이터 시리즈들이 스카이넷이라는 과거에 집착하다가 흥행과 평가 양쪽 다 실패하며 산화해간 것과는 달리, 본작은 시리즈의 상징과도 같은 스카이넷을 과감하게 놓아버린다.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는 과거에서 탈피한다. 미래 인류 군대의 사령관은 존 코너가 아닌 대니이고, 대니를 보호하기 위해서 나타난 것은 터미네이터가 아닌 강화인간 그레이스이며, 핵전쟁을 상징하던 스카이넷은 좀 더 복합적인 위협을 상징하는 리전이다. 그리고 1, 2와 다크 페이트 사이의 그 커다란 간극을 잇고, 또 지켜보는 연결고리는 존 코너라는 희망에서 단절된 사라 코너와 스카이넷이라는 자신의 근본에서 단절되어 시간의 미아가 된 터미네이터이다.

구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상징과도 같던 <스카이넷>을 대체한 <리전>은, 작중에서 보여주는 오늘날 미국의 현실과 맞물려, 과거 핵전쟁의 공포를 상징하던 스카이넷과 달리 뭐라고 특정하기 어렵고 복합적인 위협을 은유하고 있다. 따라서 이전과는 달리 그 인상은 다소 희미하며, 그렇기에 리전은 그 탄생의 배경보다는 '어떤 환경 속에서' 새로운 미래의 희망인 대니 일행을 조여오는지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오늘을 살아가는 관객에게 각인시킨다.
영화 속에서 나타내는 오늘날의 미국은 어떤가? 디지털 세상에서 사람을 특정해 감시하는 것이 가능하고, 1과 2에서 사라 코너가 자유로이 오가던 멕시코 국경은 높은 담과 군인에 가까운 복장을 한 수비대원들, 신기술인 드론에 의해 막혀 있고 그곳을 넘는 자들은 어떤 군사 경계를 넘는 공비들처럼 사냥당하며, 포로나 범죄자처럼 격리당한다. 실상 그들 중 태반은 그저 향상된 삶을 찾아오는 보통 사람들인데도.

우연찮게, 아니 어쩌면 의도한 듯, Rev-9은 매번 그러한 상징적인 장소에서 나타난다.

사건이 시작되는 날 아침 공장에 출근하니 동생이 일하던 자리에는 로봇이 들어와 말그대로 기계적으로 일하고 있다. 능력을 인정받아 아직 해고 대상이 아닌 대니와는 달리 하루아침에 남동생이 일자리를 잃게 된 상황이다.
그리고 대니의 아버지를 살해하고 쫓아온 Rev-9이 등장해 공격을 가해오고, 결국 직장을 잃은 동생은 Rev-9에게서 누나와 함께 도망가던 중 목숨까지 잃고 만다. 배경은 멕시코지만, 영화를 제작한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실직이 갖는 의미를 생각하면, 아니 미국이 아니더라도 대니와 동생 두 사람의 수입으로 유지되던 가정은 Rev-9이 아니더라도 앞길이 순탄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파서 집에 있는 아버지를 부양하는 데 한 사람 수입으로 될까?



Rev-9이 다시 공격을 가해오는 곳은 미국 국경이다. 현대사회의 감시체계를 통해 축적된 디지털 데이터를 통해 대니 일행의 행선지를 파악한 Rev-9은, 미국 국경경비대 사이로 간단히 침투해 감시드론을 탈취하고, 가짜 정보로 국경을 차단하기 위해 조직된 경비대를 움직여 대니 일행의 발을 묶은 뒤 공격을 가해온다.
그 와중에 Rev-9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참전해 입은 부상으로 골반에 나사못을 박았다면서 천연덕스럽게 보안검색대를 통과해 밀입국자들을 붙잡아놓은 격리소로 쳐들어와서 당황한 채로 자신을 막아서는 국경경비대원들 상대로 활극을 벌인다. 21세기 초 이후 계속되는 전쟁에 의한 참전용사들의 PTSD와 그에 따르는 사건 사고를 떠올리게 하는 요소다.

Rev-9의 추격은 시간의 미아가 된 뒤 전형적 미국 남성의 삶을 살고 있던 터미네이터의 집, 군 기지, 대표적 사회기반시설인 댐까지 이어진다.

미국의 평범한 사람들을 안전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만들어진 각종 감시체계와 국경의 거대한 벽은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고, 도리어 인류의 희망을 말살할 <리전>의 첨병인 Rev-9에게 이용당한다. 그리고 현대 사회가 가진 문제의 위협은 Rev-9이라는 위협이 결국 평범한 미국식 가정과 군 기지, 사회기반까지 도달한게 만드는 데 일조한다. 국경경비대원들이 무더기로 들러붙어도, 군 병력이 막아서도, 최신형 F-35 전투기들이 붙어 있어도 막을 수 없는 보다 근본적인 위협이다.


- (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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